저의 혈액형은 A형입니다. 그래서 저를 ‘다정다감하고 배려를 할 줄 알며 또한 소심한 편이다’고 보실 지 모르겠습니다. 혈액형과 성격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우생학적으로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하려는 억지 주장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B형은 개성이 강하고 자기 중심적이다, O형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AB형은 바보 아니면 천재다 등등. 우리나라 인구 중 A형이 34%라고 하는데, 전국의 1/3이 저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고 믿기가 어렵습니다.

또 저는 소띠입니다. 1962년생이라서 범띠 같지만, 띠 구분의 기준은 입춘이기에 2월 생인 저는 아깝게(?) 소띠가 되었습니다. 소띠의 성격은 ‘우직하고 성실하고, 진실되며, 심성이 여유롭다’ 등 입니다. 대개 동물의 특징을 따서 설명합니다. 하지만 소띠 동창들의 다양한 성격을 잘 알기에 이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설명입니다.

한편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MBTI로는 INFJ입니다. 이는 ‘옹호자’로 차분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이상주의자라고 합니다. MBTI는 인간의 성격을 4가지 척도로 나눠 설명합니다. 내향(I) 대 외향(E), 직관(N) 대 감각(S), 감정(F) 대 사고(T), 인식(P) 대 판단(J)입니다. 이런 척도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16개의 조합 중 하나의 성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장황하게 저의 성격 유형을 종류 별로 말씀드린 이유는 2가지입니다. 먼저, 개인의 성격을 이처럼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4가지(혈액형), 12가지(띠), 혹은 16가지(MBTI)만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향에 가까운 내향도 있고, 내향에 가까운 외향도 있지 않나요? 이처럼 ‘다양한 성격과 그 안에서 또 다양한 버전’이 있음을 인정할 때, 타인을 성격 유형이라는 간단한 틀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이런 성격 유형을 과신해서 자신을 어느 한 유형에 고정시키는 것은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나는 A형이라서 원래 그래’ ‘나는 I라서 어쩔 수 없어’ 라고 한다면, 오히려 다양한 가능성을 무시해서 발전과 성장을 스스로 가로 막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성격 유형을 아는 것은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성격은 주어진 역할과 여건에 따라서 변화하고 또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