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교회

네팔

네팔

Nepal

  • 면적 : 147,181㎢ (한반도의 ⅔)*
  • 위치 : 티벳과 인도 사이. 세계 10대 최고봉 중 8개 보유
  • 인구 : 29,852,682명, 1.86%의 연간성장률*
  • 수도 : 카투만두 Katmandu
  • 공식언어 : 네팔리 Nepali (전체 언어 127개)
  • 종교 : 힌두교 75%, 이슬람 4% 불교 13%, 기독교 3%미만*

선교사 소개

라지프 형제는 취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2004년 한 교인의 소개를 통해 우리 교회로 인도되었습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들어왔던 라지프 형제는,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형제들의 사랑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후, 고국 네팔에 복음을 전하기로 헌신하여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네팔 현지에서 사역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결정에 따라 2010년 네팔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현재는 네팔에서 계속 신학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현지 교회에서 사역 훈련을 받는 중입니다.
아내 야소다와 그레이스, 피터, 디모데 삼남매가 있습니다.

저는 1972년 9월 18일에 네팔에서 태어났습니다. Tribhuban 법대를 졸업하고 가정법 변호사가 되었지만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네팔의 법정 시스템에 매우 실망하여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해외에서 직장을 구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중, 친구 중 몇 명이 한국에 간다고 하는 말을 듣고 1997년 말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후 2002년까지 한국과 네팔을 오고 갔습니다. 2002년 초부터는 네팔의 정치적 문제로 자주 방문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국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한국 생활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저의 권리를 대변해 주지 않는 외로운 상황에서 때때로 영국 군인이셨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의 대부분 사람들은 힌두교인이나 라마불교 신자 입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을 당합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초청받지 못하는 등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땅에서의 외롭고 지친 마음 중에 할아버지께서 전해 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교회로 발걸음을 하게 하였습니다. 2003년 10월에 단골 과일가게의 주인이 저에게 교회에 나갈 것을 권유하였을 때, 저는 외국 생활에 익숙하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교회를 소개해 주신 겁니다. 외국인으로 한국사람들의 교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첫 예배를 드리면서 마치 집에 온 것 같은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모든 분들이 저를 편안하게 대해 줬습니다. 몇 주 간 교회를 다닌 후에 O5셀 멤버가 되었습니다. 셀 모임에 참석하면서 크리스천의 삶이 무엇인지 배우기 시작했고 저의 삶을 셀 형제들에게 열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들은 진지한 관심과 진정으로 도우려는 마음으로 저의 문제와 상황에 대해서 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형제들과의 관계성이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성만큼 중요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교회 생활을 하던 중에 이동기 전도사님과 요한복음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첫날에 요한복음 1장 1절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를 통해 하나님과 영생에 대해 배웠습니다. 저는 사후세계가 존재함을 믿게 되었고 이 세상은 결코 저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요한복음 1장 4-5절을 통해서 제가 어둠 속에 있고 빛을 보기를 원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힌두교인이 믿는 여러 신 중의 한 신이 아닌 진정한 하나님을 믿기를 원했지만,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알 지 못했습니다. 또 어디로 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어둠 속에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죄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간절히 믿고 싶었지만 죄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하나님 만나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에 많은 죄를 범했으며 앞으로도 끔찍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어둠 속에 있는 이유는 결국 세상이 죄로 가득 찼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4년 여름 수양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성경 속의 죄인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인정하게 되면서 반드시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제게는 예수님이 꼭 필요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저의 개인적인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네팔 사람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수많은 거짓된 신을 믿고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 항상 하루 한 끼 때울 걱정으로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예수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예수님만이 모든 것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가서 편하게 살고 싶던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제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을 우리 나라에 가서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06년부터 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생기지 않았던 아기도 갖게 되어 2남1녀의 자녀를 두게 되었습니다. 2009년부터는 교회에서 한국에 와 있는 네팔 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바다가 없는 나라인 네팔 사람에게는 생소한 바다를 구경시켜 주기 위해서 교회 식구들과 함께 무의도 피크닉을 하기도 하였고, 추석에는 한국-네팔 친선모임을 통해 네팔 음식과 민속놀이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네팔 사람들에게 ‘놀러 갑시다’라고 말하면 삼십 명까지 우루루 모였는데, ‘주일에 교회에 오십시요’ 라고 말하면 겨우 2~3 명만 오는 것입니다. 또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자고 했을 때는 나중에 생각해 보자며 거절했습니다. 한국에 오래 있으면서 많은 네팔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한 명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2009년 10월, 우리 교회의 첫 번째 네팔 비전 트립이 있었습니다. 이 비전 트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영접 직후에 저에게 보여주셨던 네팔 사람들에 대한 비전을 다시 보여주셨습니다. 박덕주 목사님과 이동기 전도사님의 네팔어 통역을 위해서 많은 네팔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 앞에 섰을 때 너무나 감격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예수님을 믿은 후 한번도 네팔 기독교인을 만난 적이 없는 제가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역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 비전 트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 일을 위한 팀웍과 펠로우십이 얼마나 소중한 지, 제가 속한 교회가 얼마나 감사한 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눈으로 네팔을 보게 되었고, 네팔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으며, 네팔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네팔 사람이었지만 한국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크리스천으로서 마치 한국 크리스천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네팔 찬송도 몰랐고 네팔 크리스천들의 생활 관습도 몰랐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습니다.

네팔에서 돌아온 후 횃불트리니티신학교의 신학대학원 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펼칠 배움의 좋은 기회였지만, 가정적으로는 가장 힘든 때이기도 하였습니다. 막 태어난 셋째 아이까지 3 자녀를 돌보면서 영어 프로그램으로 하는 신학공부를 충실히 하기가 힘겨웠습니다. 그러던 중 박덕주 목사님은 지난 번 비전 트립에서 확인한 것처럼 네팔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저의 처지를 고려할 때, 차라리 네팔에 가서 신학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네팔 교회에 다니면서 훈련 받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기도해 볼수록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신학교 졸업 후 네팔에 돌아간다면 저는 네팔 사람들에게는 외국인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또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 예쇼다의 영적 성장과 어차피 네팔의 환경에 익숙해야 할 자녀들을 고려해 볼 때도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직 준비도 안된 상태인데 네팔로 돌아간다니 너무 떨리고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저와 함께 하심을 믿고, 저의 모국이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많은 영혼들이 빛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로 하였습니다.

2010년 9월 교회에서의 파송식과 함께 네팔로 돌아왔습니다. 8년 전에 네팔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막상 돌아가려고 하니, 어느 교회와 신학교를 가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문제를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비전 트립을 계기로 알게 된 선교사님과 네팔 침례교 총회의 목사님들의 소개로 Kathmandu Institute of Theology(KIT)로 전학을 하고, 카투만두에서 안정적으로 사역하고 있는 Living Baptist Church(LBC)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저희 가족을 방문하러 박덕주 목사님과 이동기 전도사님이 네팔을 방문하였을 때 너무도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저희 가정을 영적으로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이제는 선교사로 파송하여 계속 영적, 물질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교회가 있음이 너무도 감사하고 마음 든든합니다. 지금은 KIT에서 신학대학원 학업과 함께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국의 우리 교회와 똑같이 셀 사역을 하는 LBC에서 성경공부와 기도모임 인도 등의 사역이 주어졌습니다. 열심히 그러나 겸손히 준비하고 훈련 받아서 네팔의 많은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