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자

전 7:2, 히 2:10; 14-15

1. 목회는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주일이다. 2023년 한 해가 다 지나간다. 어떤 의미에서 2023년 한 해는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해를 맞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는 죽음을 준비시키는 일이다’라고 하셨다. 참으로 공감이 되는 말이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도 체험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은 모두 다 죽는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일이라는 말이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또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히려 죽음을 영광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목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1) 김치영 목사의 <따로 남길 말이 없다>

김동건 신학교 교수의 <빛, 색깔, 공기>. 돌아가신 부친 김치영 목사님이 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면서 믿음과 소망으로 죽음과 장례를 준비한 과정을 적은 책이다. 

김치영 목사님의 <따로 남길 말이 없다>라는 기도시

주여,

당신이 주신 생명, 귀하게 받아 삽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당신이 오라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미련이 남아 뒤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죽음이 임했을 때,

자식들을 불러 모아 못다 한 일을 후회하고

남은 일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기지 않도록 하소서.

나의 마지막 말은

"따로 남길 말이 없다"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함께 산책 갔다가 먼저 집으로 떠날 때처럼

자연스럽게 "먼저 간다"고 말하며

그렇게 떠날 수 있도록 하소서...

갑자기 다가오는(그렇게 느끼는) 죽음에 당황하지 말고, 평소에 죽음을 잘 준비해서 ‘따로 남길 말이 없는’ 삶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2) 올해 5월에 돌아가신 팀 켈러 목사의 처제 태리 켈러는 2018년 암으로 소천

자신의 장례식 때 부를 찬송가를 골라 놓고 기도문도 작성해 놓았다고 한다. 장례식 때 자신의 일생을 기리지만 말고(조사), 반드시 복음을 전해 달라고 팀 켈러 목사님께 부탁했다고 한다.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사람들도 각자의 죽음을 준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3) 사전 장례식: 죽기 전에 친척, 지인들을 초대해 작별인사를 하는 것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장례는 남은 자들만의 시간이다.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고마움과 미안함을 나누고, 예수님 안에 있는 소망을 다짐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한다. 

102세 아버지는 내일 온가족이 모여서 설명절을 보내고 다음날 요양원으로 가신다. 설명절을 일종의 사전 장례식처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큰 며느리에게 고맙다는 손편지와 금일봉. 40년 전에 남편 여의고 아들 3형제를 혼자 키운 큰 며느리. 시댁에서는 형편상 큰 도움을 주지 못함. 그런데도 시부모 돌보고 집안 행사 참여하는 등 며느리 역할을 한 며느리에게 고마움 표시.

2. 죽음을 힘들어 하는 이유

삶은 기나긴 여정(여행의 과정)이고 죽음은 그 여정의 끝인가? 아니다! 삶의 여정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으로 이어진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원으로 가는 관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죽음을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두려워서 회피하기도 한다. 현대인이 죽음을  힘들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팀 켈러 목사의 <죽음에 관하여>에 의하면 그 이유는 이렇다.

(1) 의학의 발전

의학 발전의 축복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가족이나 친족의 임종을 보면서 자랐다. 슬프지만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국의 저명한 목사이자 신학자인 존 오웬은 열한 명의 자녀와 첫 아내를 모두 자기가 보는 앞에서 먼저 떠나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예전에는 죽을 많을 병을 고쳐낸다. 그래도 못 고치는 사람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병원이나 호스피스병원에서 죽는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도록 단 한 사람(심지어 부모)의 죽음도 지켜보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죽음이 너무나 낯설게 여겨진다. 누구에게나 닥칠 현실이건만, 낯설기만한 죽음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아간다. 발전된 의학이 뜻밖의 폐해를 가지고 왔다.

(2) 현세에만 집중하는 세속문화

대부분의 종교는 어떻게 고난을 겪어나가는 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현세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윤회, 열반, 천국을 믿는 가르침이 있다. 결국에는 천국에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고,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현세와 물질세상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현세에서 겪는 고난과 심지어 죽음이라도 그것을 건드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고난, 비극, 죽음이 삶의 의미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문화는 본질상 세속적이다. 종교와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이런 탈종교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종교에서 가르치는 신, 영혼, 초월적 세계, 초자연적 차원 등을 부정하다보면 물질만 남는다. 삶의 의미와 목적이 전부 이 땅/물질세계의 시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이 안에서 성공과 실패, 웃음과 울음, 비교와 경쟁 등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소멸된다. 죽음은 재앙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세속적인 현대문화의 한계다.

(3) 심판에 대한 두려움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이 다가오면 일생을 돌아보면서 후회를 하게 된다. 날려버린 기회, 허송세월 한 것, 마땅히 했어야 할 말/행동, 마땅히 하지 말았어야 할 말/행동 등으로 죄책감이 들 수도 있다. 죽음 앞에서 서면 이전처럼 양심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T.S. 엘리엇은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곧 끝이 아닐까 봐 그게 두려운 것이다”라고 했다. 후회와 두려움 이런 감정의 배후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그 두려움은 죽음 앞에 가까이 설수록 더 커진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는 해결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죽음을 회피하고 부정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음을 대하고 있나?

3. 우리의 챔피언 되시는 예수님

(1) 죽음은 고마운 선물이다. 이생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의 곁을 떠나지만 단 하나의 예외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 죽음 속으로 들어가, 그 죽음을 통과해 우리를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한다. 우리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는 것, 우리가 결코 잃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뿐이다. 

(2) 하나님이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로 세우셨다고 한다(히 2:10). 

창시자? 어떤 사상이나 학설을 시작한 사람.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창시자인가? 

창시자는 ‘아르케고스’ pioneer(개척자) 혹은 champion. 오늘은 챔피온으로 설명해 본다.

고대 전투는 장수들의 대리전이었다. 이스라엘 측의 다윗과 블레셋 측의 골리앗의 싸움, 그리스 측의 아켈레우스와 트로이 측의 헥토르의 싸움. 장수끼리의 싸움에 전투의 승패가 달려있다. 챔피온은 이런 대리전을 치르는 사람이다. 챔피온이 이기면 그가 대표하는 군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전투에 승리한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큰 적인 죄와 죽음에 맞서서 싸우셨다. 마땅히 우리가 치러야 할 죄값인 죽음이라는 형벌을 우리 대신에 그 분이 대표로 치르셨다. 그리고 부활 하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멸하셨다(히 2:14). 우리의 챔피온이신 예수님이 죽음을 물리치셨다.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도 죽음을 물리치게 되었다.

(3) 모든 종교가 죽음과 내세를 말하지만 동시에 천국에 가려면 착하게/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양심의 고발을 억누르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최선의 삶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마땅히 했어야 할 말/행동, 하지 말았어야 할 말/행동이 다 떠오른다. 그로 인한 심판이 두렵다. 그래서 죽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의 구원은 나 자신의 의로움이나 업적에 달려 있지 않다. 대신에 죽음을 이기신 챔피온 예수님에게 달려 있다. 그 분께 속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예) 어떤 군목이 전투를 앞두고 겁먹은 병사에게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살아남는다면 예수님이 자네와 함께하실 것이고, 전사한다면 자네가 예수님과 함께 할 것이네. 어느 쪽이든 자네는 그분의 것일세.”

(4) 전에 목회자 컬럼에서 인용한 팀 켈러 목사의 글

조지 허버트(17세기 영국 시인이자 성공회 성직자)

”Death used to be an executioner, but the gospel has made him just a gardener.”

(죽음은 한 때 사형 집행관이었다. 하지만 복음 앞에서 한낱 정원사로 전락했다.)

죽음은 한 때 우리를 벌벌 떨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었지만, 이제 죽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정원에 심겨진 우리를 비범한 존재로 자라게 하는 것 뿐이다. 죽음이 크리스천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더 좋게 해주는 것 뿐이다.

어떻게? 연약한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구원의 창시자/챔피온이신 예수님께 감사하게 만들어 주고, 현세에만 목매는 게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이 오히려 정원에 아름다운 꽃을 자라나게 하는 정원사가 된다.

결론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자.

죽음을 준비하자. 멋진 장례식을 계획하자.

챔피온 되신 예수님께 속하자.

2023/12/31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