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연고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이 잠언에서 하필이면 “왜 물인가?”하는 것입니다. 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것일까? 어떤 물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잠언이 서구 유럽 기독교적 전통에서 나왔다는 사실 속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물’은 침례의 물(water of baptism)을 가리켰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잠언은 침례의 물이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핵심적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혈연적 가족이 언약 공동체, 달리 말해 침례를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하나님의 가족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크리스천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정체성은 침례를 통해 확립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예식이 침례식이고, 침례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물입니다. 물은 죽음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본질임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동시에 그분에게 바치는 충성도가 그 밖에 다른 어떤 충성도보다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누가 14:26)는 말의 본래 뜻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충성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연결되는 것은 침례식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침례의 물을 통해 우리의 자연적 본성과 온갖 인간적 관계들에 대해서는 죽고, 새로운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그를 향하여 충성을 다하며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될 때 비로소 분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