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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탈종교화 시대의 전도

본문말씀 : 요 17:20-21, 엡 2:18-19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4.06.09
  • 관리자
  • 2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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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종교화 시대의 전도

요 17:20-21, 엡 2:18-19


오늘은 목회자 칼럼 내용을 풀어서 설교한다. 글로 읽는 것보다 말로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올해 교회의 표어는 전도하는 해. 그런데 전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1. 탈종교화 시대

이 시대는 탈종교화의 시대라고 한다. 이건 한국교회가 쇠퇴기라고 하는 것보다 더 큰 흐름이다.


한목협(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과 목회테이터연구소의 자료

(1) 만 19세 이상 종교 인구 변화 추이. 무종교인의 증가 추세(기독교가 아니라 종교)

2004년 43.0%, 2017년 53.4%, 2023년 62.9% (종교인은 37% 정도!)

전 세계 인구의 80% 이상이 종교인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교회가 쇠퇴기라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 가득 찼다. 천 명 모이는 교회/집회에 가 보라. 

여의도순복음교회 출석교인 43만명. 이 곳에 있으면 이런 통계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2) 성별 종교인 분포(기독교인 아니라 전체 종교인)

남성 2017년 39%, 2023년 32%. 여성 2017년 55%, 2023년 42%


(3) 연령별 종교인 분포(기독교인 아니라 전체 종교인)

20, 30대는 2023년 각각 16%, 19%로 2017년 대비 절반가량 감소해 20~30대의 종교인은 해당 세대에서 5명 중 1명도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59%)


기독교의 침체는 원인을 분석해서 개혁하면 된다. 목회자 비리, 개교회 이기주의, 교회의 분쟁 등

그러나 탈종교화는 더 큰 흐름이다. 파도가 아니라 해류이다. 세부적 개혁이 아니라 전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한다.

학자들은 두 가지로 원인을 설명한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화. 원인과 대안을 생각해 보자.


2. 탈종교화의 원인와 대응

(1) 사회의 발전 -> 영성: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세계적으로 볼 때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후에 종교가 발전한 나라가 없다고 한다.

며칠 전 기사: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6194달러, 사상 첫 일본 추월


(a) 사회와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서 그동안 종교가 맡아서 해 오던 많은 역할들을 다른 기관에 넘겨주었다. 예를 들면 종교가 의료, 복지, 교육, 오락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병원, 정부의 복지정책, 학교, TV와 인터넷 등에 그런 역할을 내어주었다.

예전에는 종교인이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지금은 지식이 보편화 된 시대

전에는 종교를 통해서 여러 필요를 채우려는 욕구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수요가 사라진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종교를 찾지 않는다.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b)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종교는 필요한가? 그렇다!

종교성 혹은 영성!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보다 더 큰 차원/존재를 인식하고, 그 차원/존재와의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있다. 

그저 먹고 사는 게 해결된다고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한다고 만족하는 존재가 아니다. 

뭔가 자기보다 큰 초월적인 존재/세계를 추구하고, 그런 존재/세계를 만나고 경험할 때,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발전하는 것을 추구하는 존재다.

(나는 아닌데? 삶에 찌들어서 종교성/영성을 잃어버렸다. ㅎㅎ)

이런 체험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존재다.


(c) 우리는 그동안 속아왔다. 소유(Having)가, 성취(Doing)가 나를 잘 설명해 준다고 속아왔다. 그래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했다. ‘잘 살아보세~’ ‘일등’ ‘세계 최초, 최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한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다른 사람이 끊임없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변덕스럽다. 새로운 것이 나온다. 그래서 허탈하다.


종교는 그게 아니라 나는 관계(Being)를 통해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회개와 영접) 보여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종교의 고유한 역할이다. 종교의 핵심 기능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신적 체험, 영성

이제는 종교의 고유한 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나머지 주변 기능은 점차 사회에 내어준다.


(d) 왜 하나님을 믿나? 복을 받기 위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자녀 잘 되라고? (액땜 하는 식으로 기도?)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복(하나님을 아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이것이 종교/기독교의 핵심 기능이고 이것은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변한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AI 시대가 되어서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것을 해 준다해도, ‘나는 왜 존재하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만 해답을 얻고 또 안심할 수 있다.


(e) 여러분은 종교의 주변 기능에 머물러 있나? 아니면 핵심 기능을 누리고 있나?

교회 봉사도 귀하고, 예배 참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알아나가고 친밀하게 교제해 나가게 하는 장치이다.

예수님: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말이 아니라, 제자들의 눈 앞에 앉아 계시는 인간 예수의 말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 너희도 다 이렇게 되어라.’


이것을 체험하고 누리며 사는 삶이 진정한 종교인의 삶,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다.

이런 핵심을 놓치고 껍데기만 붙들지 않기를 바란다.

종교인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 그래도 괜찮다. 참 종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f) 나의 기도를 귀담아 들으시고 응답하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과의 기도 체험,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알려주시고 내가 하길 바라시는 뜻을 알려주시는 것을 알게 되는 성경읽기 체험, 

교회 공동체가 다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 

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끼고 경험하는 체험, 

이런 경험들이 자산이 되어서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는 확신의 체험


앞으로는 부수적인 기능을 바라고 교회를 찾는 사람은 적게 될 것이다. 핵심적 기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올텐데, 우리 자신부터 이런 경험이 없다면 전도는 무슨 의미이겠나?


(2) 개인화 시대 -> 따뜻하고 탈권위적인 공동체

(a) 예전에는 직업을 자기 맘대로 정하지 못하고 가업을 이어 받았다. 일본은 몇 대째 가업으로 내려오는 장인 문화가 유명하다. 장점도 있지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단점도 있다.

결혼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못했다. 집안 끼리의 중매결혼이었다. 그럼에도 큰 문제없이 다정하게 잘 살았다.

삶의 중요한 것 대부분을 자기 자신이 결정하지 않거나 못하고, 국가나 부모 혹은 공동체가 결정한 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자기가 결정하는 시대다. 결혼도, 직업도, 직장도, 사는 곳도 모두 자기가 결정하는 개인화 시대다. 개인의 주체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사회에서도 그렇게 장려한다. ‘하고 싶은 게 뭐니?’ ‘좋아하는 사람 있어?’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를 누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 일어나는 큰 변화다.


(b) 그러나 개인화에는 자유가 주어진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안감이 따른다. 인생과 사회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부담과 불안. 게다가 세상은 급변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갈피를 잡기 어렵다. 


(c) 그래서 개인화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필요하다. 따뜻한 관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는 따뜻해야 한다.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위로와 격려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엡 2:18-19 이방 사람과 유대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학교가 아니라 가족이다. 언제라도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명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우선이다. 


교회 자녀뿐 아니라 전도 대상자에게 신앙 강요? 부모/집안의 종교를 당연히 받아들인다? 이전 같지 않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는 부모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롤모델로서 더 큰 역할이 요구된다.


물론 여전히 옛 방식으로도 통하는 경우가 있다.

엄청난 규모의 교회, 모든 시설과 혜택이 갖춰진 교회, 카리스마 뿜뿜의 지도자(가스라이팅 주의!).... 아무 생각 없으면 당할 수 있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노리는 이단의 수법이다. 


(d) 탈권위적 공동체

권위는 여전히 필요하다. 권위가 없으면 사회/조직은 무너진다. 권위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위적/권위주의는 피해야 한다.


무엇이 권위적/권위주의적인가?

나이가 많으니까 무조건... 지위가 높으니까 무조건... 

그보다 나이값을 하는 섬김과 희생 그리고 지혜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권위를 부여하고 존경하며 따르게 된다. 지위/직분에 걸맞는 책임과 역할을 할 때....

긴장감이나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설명이 있고 선택권이 주어짐)

그 대신 지도자가 먼저 섬기고 남을 세워주는 분위기


결론

탈종교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면 수용해야 한다.

우리만 예외가 된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우리는 탈종교화의 원인을 파악하고 올바로 대응하는 것이다.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해야 할 것을 구분해서, 전자는 굳게 붙잡되 후자는 시대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이 시대의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다.


사회의 발전으로 인해서 여러 기능을 사회 기관에 넘겨주고, 종교 고유의 기능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 영성! 하나님과의 관계! 체험 신앙!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개인화의 시대. 강요하지 못한다. 설명과 설득 그리고 선택하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올바른 것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

개인화는 자유와 함께 불안을 준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하다. 따뜻하고 권위적이지 않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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