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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 3. 시기: 가장 들키기 싫은 죄

본문말씀 : 삼상 18:6-10, 약 3:13-16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2.01.23
  • 관리자
  • 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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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8DoGerY9MZ8


죽음에 이르는 죄

3. 시기: 가장 들키기 싫은 죄

삼상 18:6-10, 약 3:13-16


1. 시기/질투의 예

(1) 사울의 시기/질투

여인들의 환호성에 예민하게 반응. 그 날부터 다윗을 시기/의심하며 그를 주목하여 감시했다. 심적 상태에 그치지 않고 악한 영에게 틈을 주게 되었다. 결국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 때문에 폐인이 되고 비참한 최후(전쟁에서 아들 요나단과 함께 전사, 자신은 자결하고 수급은 적군에 의해 전시됨)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의 원문은 ‘주목하였다(keep a close eye on).’ 시기를 뜻하는 영어 envy는 ‘자세히 보다’라는 어원을 지닌 라틴어 ‘invidia’에서 나온 말이다. 악한 마음을 품고 상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시기심을 가지고, 무엇을 먹는지 입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돈은 얼마나 버는 지 등을 아주 자세히 본다.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악들이라고 하실 때(막 7:22), 그 중 시기가 포함되는데, 시기의 원문은 ‘악한 눈’(an evil eye)이다. 즉, 시기는 악한 눈으로 누군가를 자세히 지켜보는 죄입니다. 

가까운 사이의 누가 악한 의도와 시기심을 가지고 나를 자세히 관찰한다? 얼마나 끔찍한가! 


(2) 살리에르의 시기/질투

영화 아마데우스. 궁중 음악가 살리에르는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질투. 도덕과 예의가 없는 그이지만, 그의 천재성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좌절감에 괴로워함. 십자가를 화로에 던지며 하나님을 저버리는 기도 장면! 시기심은 결국 모차르트를 제거하려는 음모로 발전. 결국 제거에 성공하지만 자기 자신도 미쳐버리고 정신병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침.


2. 시기의 특징

시기와 □□? 질투! 시기와 질투의 차이? 굳이 구분한다면,

시기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에서 나오고, 질투는 내가 가진 것을 뺏길까봐 두려움에서 나온다. 예) 삼각관계

그러나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기로 한다. 질투보다는 시기에 초점


(1) 시기의 대상은 내가 잘 아는 가까운 관계

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a) 시기의 대상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이 땅을 사는 건 아무 상관없다. 형/동생이 땅을 산다면 내게 유익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촌은 같은 마을에 사는 잘 아는 사람인데, 기대할 만한 아무 유익이 없는 사이다.

(b) 시기의 대상은 비교 가능한 사람이다.

평범한 직장인은 이재용을 시기하지 않는다.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직장 동료, 선후배는 다르다.

시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동창, 같은 회사직원, 동종 업계, 같은 교인

사울과 살리에르의 경우는 아랫사람. 그러나 윗사람(인정하지 않을 때)도 대상이 된다.


(2) 시기는 가장 들키기 싫은 죄

교만이나 탐식은 쉽게 수긍한다. 은근히 자랑하기까지 한다. ‘내가 좀 교만하기는 하지...!’ 

하지만 자신에게 시기심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열등하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 상하고, 유치해 보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절대로 상대방에게 들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은밀하고 잔인하다.

차라리 시기/질투가 난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면, 시기/질투가 아니다. 부러움일 뿐이다. 


(3) 시기는 파괴적이다.

탐욕이라면, 단순히 나도 땅을 사면 그만이지만, 시기심의 경우는 내가 아무리 사촌보다 배나 되는 땅을 사더라도,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 사촌이 옆에 있는 한, 시기심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를 파멸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상대도 파멸(아마데우스)시키고, 자기도 파멸(사울)하게 되는 무서운 죄다.


시기와 □□? 분쟁, 다툼!

시기는 비교와 경쟁에서 나오는데, 경쟁상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분쟁과 다툼을 일으킨다. 험담, 악성루머, 은근한 술수, 반박... 그런데 한 사람을 제거해도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대상이 등장한다/만들어 낸다. 그래서 끝없는 분쟁과 다툼을 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평생 비교하고 불안하고, 누군가를 비판하고 헐뜯고,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하고, 분노하고 증오한다. 결국 이렇게 망가지고 파멸한다.


(4) 시기는 마귀에게 이용 당한다. 

(a) 사울의 예: 악한 영!

(b) 야고보의 경고

내부적으로 분열과 다툼이 있었던 교회에 쓴 야고보서. 그 원인은 시기심과 경쟁심이라고 지적한다.

시기심과 경쟁심을 가지고 대할 때 나오는 지혜(기가 막힌 아이디어, 논리, 주장)는 위에서 내려온 것(하나님)이 아니라, 땅에 속한 것(세상적/세상방식)이고, 육신에 속한 것(육신의 욕구 충족: 교만, 자랑, 경쟁, 제거....), 악마에게 속한 것(귀신이 주는 지혜?)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혜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그 지혜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즉 무슨 마음에서 나왔는지, 어떤 열매를 맺는 지를 살펴봐야 한다. 

사랑과 온유함에서 왔나? 순결, 평화, 친절, 온순, 자비와 선한 열매(17절)을 맺나? 

아니면 시기심과 경쟁심(인정 요구, 자기주장, 권력추구)에서 왔나? 

후자는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중이다. 그래서 혼란을 야기하고, 자신과 타인을 파멸시키게 된다.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람도 마귀의 밥이다. (교만, 분노도 마찬가지~^^)


3. 해결 방법

시기/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또한 시기/질투가 있어야 발전이 있다. 건강한 질투는 선의의 경쟁을 가져오고 건전한 발전을 이룬다. 그러나 도가 지나친 시기/질투는 파괴적이 되고 악한 영의 도구가 된다. 

어떻게 하면 발전의 동력을 삼되, 선을 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나? 

믿음 밖에 없다!? 어떤 믿음?^^

2가지 진리를 깊이 받아들이고 삶으로 살아내는 믿음이면 좋겠다. 


(1) 나는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인생이다

전제: ‘나’는 하나님께 죄인이고, 회개하고, 십자가 용서를 받아들인 나. 그래서 이제는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고 고백한 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삶의 방향을 그렇게 잡은 나.


(a) 누구나 다 의미 있는 인생을 원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런데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는가?

(i) 소유/성취: 나는 무엇을 가졌나/이루었나? (ii) 인정: 다른 사람이 얼마나 인정해 주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위/직급, 연봉, 집 크기, 차량, 자녀의 성공으로 입증하려고 애쓰고,

이렇게 훌륭한 나를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주고 인정하기를 애쓴다. 

(그래서 때로는 희생적/이타적인 행위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한 자기의/자기애에 불과할 수 있다.)


(b) 그런데 문제는, 소유와 타인의 인정이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더/덜 가졌느냐에 의해, 누구보다 더/덜 인정받느냐에 의해 나의 삶의 가치/희비가 순간순간 뒤바뀌게 된다. 따라서 그 ‘누구’가 비교/경쟁의 대상이 되고, 시기심이 발동을 하게 된다.


(c)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말 ‘다 이루었다!’

물론 인류 구원이라는 커다란 사명을 이루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인생을 평가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삶이다. 소유와 인정을 통해 존재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의 잣대로 본다면 정말 망한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런 말을 하고, 그것이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삶, 다 이룬 삶을 사셨다. 침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울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예수님의 존재가치를 부여하였다. 아니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셨다.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에까지도.


(d) 정말로 하나님이 나를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신다고 믿는다면!

정말로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정말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고귀한/성공한 인생이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미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삶, 다 이룬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더 이상 소유와 타인의 인정에 목맬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경쟁할 필요도 없고, 그런 대상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들키기 싫고, 가장 추악하고 파괴적인 시기심로부터 해방되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삶이 아닌가!


(2)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거룩한 착각’을 하자!

각자의 부르심이 다르고, 그릇이 다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는 생각!!


하나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신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그래서 내게 주신 직업/직장, 남편/아내/자녀, 지위, 교회, 목사, 목자목녀가 최고다!

내게 허락하신 집, 차량, 재정상황, 건강, 머리... 가 최고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질 때 시기심에서 자유롭게 될 것이다.


1/23/20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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