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교회

주일설교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 1. 교만: 모든 악의 뿌리

본문말씀 : 눅 18:9-14, 잠 16:18, 벧전 5:5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2.01.09
  • 관리자
  • 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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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9f0-LNVtmo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

교만: 모든 악의 뿌리

눅 18:9-14, 잠 16:18, 벧전 5:5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죄를 살펴보는 중이다. 

사실 아무리 작은 죄라고 해도 모든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죄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뿌리에 해당하는 죄들이 있다고 보고, 교회가 지난 1,500년 동안 가르치고 경계해 왔던 죄의 목록이 있는데 그것을 ‘죽음에 이르는 죄’라고 한다. Seven deadly sins.


어떤 죽음? 죄 지으면 당장 벼락 맞아서 죽거나 병 걸려서 죽는다는 말인가? 

영적(하나님과 이웃 관계), 육신적, 영원한 죽음

심적/육적 고통/고생, 관계의 어려움. 멀쩡하다고 해도 육신적 죽음 후의 영원한 죽음(지옥)


오늘은 죽음에 이르는 죄 중에서 첫 번째로 교만에 대해서 살펴본다.

누구나 다 교만한 사람, 잘난 체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교만한 사람은 교만한 사람을 귀신처럼 알아보고 싫어한다. 선수끼리 알아본다.

하지만 세상은 교만을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교만도 능력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교만은 가장 악한 죄, 모든 악의 뿌리라고 한다. 왜 그런가?


1. 교만의 특징

(1) 교만은 경쟁적이다.

- 교만은 끝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인데, 더 정확히는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인다.

교만한 사람은 어떤 좋은 것을 가지게 되었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의 비교대상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가져야만 만족한다. 조금이라도 더 부유하고, 더 똑똑하고, 더 성공했다고 느낄 때 만족해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야만 한다. 

예)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도 세리와 비교하기에 바빴다. ‘이 세리와는 같지 않습니다.’


- 교만은 파악하기 쉽지 않다. 대상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자기보다 잘났거나, 더 높거나, 더 나은 대상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반면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더 약한 대상에 대해서는 큰 동정심을 갖는다. 그래서 호의적, 친절, 너그럽게 대한다. 그래서 주위에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느냐고 칭찬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보다 부족한 대상이기 때문일 뿐이다.

반면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비판의 날을 세운다. 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겸손한 척하면서 그 날을 숨긴다. 아직은 자기가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겸손으로 가장한다. 힘을 더 가질 때까지만.


(2) 교만은 공동체의 분열을 일으킨다.

- 교만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남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한다. 남의 말은 들어봤자 시덥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더 합리적이고, 의롭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의상(나이, 지위, 교양) 남의 말을 듣는 척은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 교만하면 쉽게 분노한다. 자신의 주장/판단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 비난의 날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결국 교만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공동체의 평화와 관계를 해친다. 교만한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의 하나 됨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3) 교만의 기저(뿌리/바닥)에는 열등감이 있다.

- 교만한 사람은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한다. 기회만 나면 자기 자랑이다. 자기는 감사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듣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이렇게 자랑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심리는 열등감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우월감(성공)을 갈망하게 된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우월한 위치(성공)에 서게 된다. 열등감을 성공으로 만회했다는 자만심/교만에 차게 된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열등감이 다 해결되지는 못한다. 성공의 요소는 본질적/영속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열등감의 요소가 자극될 때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즉, 교만한 사람은 늘 자신만만한 것 같고, 당당한 것 같고, 강한 것 같으나, 실은 가장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그 상처가 성공으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열등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각자의 ‘부르심’이 있다. 빈부귀천, 역할, 환경... 하나님의 부르심이 자신의 고유한 가치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할 필요도 없고, 열등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거나 인생/사회/특정 대상에 복수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존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인생 최대의 비극이다.


(4)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다. (C.S.루이스)

‘사탄이 사탄인 것은 그가 교만하기 때문이며(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만은 죄의 뿌리다.’ 

교만이라는 뿌리에서 뻗어나가는 가지/줄기가 바로 시기, 질투, 분노, 나태, 음란, 탐심, 탐식 등의 죄악이다.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교만에서 분노가 나온다. 내가 남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교만에서 나보다 더 잘난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생긴다.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영적 게으름을 낳게 한다. “교만은 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죄로 이끈다.”


상대적으로 작은 죄들은 사탄이 우리의 인간적/동물적 본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예) 탐욕, 탐심, 정욕 등.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온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암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악들에 비해 훨씬 더 교묘하고 치명적이다.


사탄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다른 것들(희생, 절제, 용기 등)은 얼마든지 봐 줄 수 있다. 마치 암에 걸리게 할 수만 있다면, 여드름 정도는 얼마든지 고치게 놔 줄 수 있듯이 말이다.


교만은 뿌리처럼 땅 속 깊이 박혀 있어서 가지/줄기에 해당하는 다른 죄가 제거된 후에도, 여전히 제거하기가 몹시 어렵다. 교만이라는 악의 뿌리를 뽑기가 얼마나 힘든 지에 대해서:

“신자가 겸손해지면 위기감을 갖고 긴급히 대응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자기가 겸손해졌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하다니!’ 하는 자부심과 만족감을 갖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교만이 고개를 쳐들게 된다. 신자가 이것조차 유혹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면, 자신이 이렇게 조심하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만들면 된다.’ 모든 욕망을 다스리게 된 것에 감사하는 순간, 그 마음이 묘하게 자부심과 교만으로 변모해 간다.” (내가 이렇게 착하다니! 나 정말 괜찮은 놈일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5) 결론: 교만의 문제는 끝이 없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교만이라는 선발대가 보이면 패망이라는 본진이 반드시 따라온다. 

이 세상에서도 패망인데, 만일 그게 아니라면 분명한 것은 저 세상에서의 패망이다. 

교만은 반드시 망하게 마련이다.


2.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

하지만 교만의 진짜 치명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성경은 교만을 단순히 자기를 높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이름을 내려고 하는 바벨탑이라고 알려준다.


벧전 5:5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왜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물리치시는가? 

저기로 가라고 물리치는 정도가 아니라 ‘대적하신다/oppose’. 적대 관계, 전쟁 대상으로 여기신다.

(1) 다른 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숨고, 도망가고, 피하는데, 교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잘났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맞대들기 때문이다. 

(2)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살아가게 되는데, 은혜/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거부/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왜 시간낭비 하며 하나님께 아쉬운 소리 하겠는가?

교만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교만은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죄다.


3. 해결방법

우리 힘으로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그 은혜를 구하는 방편이다.


(1) 공동체 훈련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방식을 내려놓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방식을 받아들이고 함께 생활하겠다는 의미다. 

예) 베네딕투스 수도원의 3대 기본 덕(규칙)은 순명(순종), 침묵, 겸손.

이것이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덕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수도원 생활을 하지 않지만, 교회생활을 통해서 이런 공동체 훈련을 할 수 있다.

교회라는 틀, 교회의 권위와 질서, 교회의 하나 됨/화평... 이런 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생각/판단/주장)을 낮추고, 교회 공동체에 순명/순종하는 훈련이 교만을 없애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교만과 싸우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공동체에 속하고, 자신을 공동체 아래에 두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개신교는 이런 면에서 천주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약하다. 아주 규율이 엄한 교회도 있다. 

우리 교회는 규율이 엄하지 않다. 조직력이 탄탄하지도 않다.

그것이 약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령님이 맘껏 활동하실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회 공동체 훈련을 통해서 교만을 없애주시는 (혹은 가라앉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다.


(2) 예수기도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방법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이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 앞을 만나게 되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 성전에서의 이사야, 다니엘, 베드로, 요한


세리의 기도: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세리처럼 부도덕한 삶을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세리의 기도 정신을 닮자는 말이다.

똑같이 기도해도 된다. 하지만 기독교 전통에서 ‘예수기도(Jesus Prayer)'라는 것이 있다.


교만을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 교만의 무서움,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드리는 기도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

예수님, 저를 불쌍히(긍휼히) 여기소서.
Oh, Jesus, have mercy on me. Have mercy on me.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여,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어떻게 기도해도 좋다. 시간이 될 때마다, 예수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자비가 절실히 필요한 죄인)를 늘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자비/긍휼을 구해보자.


1/9/20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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