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교회

주일설교

고린도전서 강해 44: 죽음은 원수이자 축복

본문말씀 : 고전 15:21-28, 계 14:13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1.09.26
  • 관리자
  • 21.10.03
  • 39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Yf9OXZOqp0


고린도전서 강해 44

죽음은 원수이자 축복

15:21-28(21-22, 25-26), 계 14:13 


서론

지난 주일에는 ‘우리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이 세상의 삶만이 아니라 내세가 있음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내세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메멘토 모리(라틴어,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기억할 뿐 아니라 죽음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자.


Ice breaking

설문조사: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죽음은 어떤 것인가? (김범석, 서울대 암병원 전문의)

(1) 고통이 없는 죽음 (2)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죽음 (3) 임종을 준비하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죽음


(1) 그래서 갑작스런 죽음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축복

(2) 유독 우리나라만 있는 대답

가족에게 떠미는 문화 때문. 고가 항암치료는 보험 커버되면서, 간병비는 커버 되지 않고 간병치료를 가족에게 떠미는 문화/제도 때문에 가족이 너무 힘들다.

생애 마지막 시간에 가족과 사랑을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계속 미안함(부모)과 죄송함(자식)의 시간들

(3) 최선을 다하는 게 무조건 최선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최선에 억지로 끼어 맞추다가(제일 큰 병원, 고가 치료), 오히려 환자를 고생시키는 경우가 많다.

말기상태가 되면 치료의 관점을 바꿔야 하는데, 잘못하면 죽음의 질이 엉망이 된다.

2010년 죽음의 질 32위, 2015년은 18위(다행)

뭐가 최선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최선을 다하다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낭비하는 경향


성경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알려주나?

1. 죽음은 마지막 원수(하나님과 인간에게)

15:26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죽음을 계획하지 않으셨다. 

에덴동산에는 죽음이 없었다. 죽음에 동반되는 고통, 슬픔, 눈물이 없었다. 에덴동산은 완벽한 행복동산이었다. 


(2) 죄로 인해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그러나 아담/하와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반역했다. 그 반역을 죄라고 부른다. 그리고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21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롬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더 자세한 설명)

죄로 인해서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뿐만 아니라, 죽음이 온 인류를 지배한다. 죽음이 가장 강력한 실제/현실이 되었다.


왜 죄로 인해서 죽음이 들어왔나?

죽음은 죄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죄인인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법정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죄 때문이 어떻게 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다. 나이 들고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결국 죽게 된다.

 

(3) 죽음이라는 원수는 이미 패배 당했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죽음이지만, 사실은 이미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다.

21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잘 믿겨지지 않는다. 병원, 장례식장을 보면 죽음은 도무지 패배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은 마치 독침이 빠진 독충과 같다. 이미 패배했다.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4) 죽음이라는 원수는 결국은 영원히 멸망 받을 것이다.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언제? 예수님이 왕의 왕이요 주의 주로 다시 오실 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을 거역하던 모든 것이 심판받고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버티면서 인간을 괴롭히던 죽음도 멸망할 것이다. 

26절 맨 마지막으로 멸망 받을 원수는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죽음을 계획하지 않으셨다.

죄로 인해서 이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

십자가와 부활로 죽음은 이미 패배했다.

재림 때 죽음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2. 죽음은 성도에게 축복

(1) 비신자에게 죽음은 원수일 뿐이다. 위의 내용 중 1/2번까지만 해당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3/4번의 약속이 있으며, 죽음은 성도에게 축복이다!

계 14:13 나는 또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1)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죽음 후의 심판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부족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심판이 두렵다. 왜냐면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문화는 어떤 형태든 간에 피 속죄제사가 있다. 희생제의(犧牲祭義). 죄책감과 두려움을 (희생)제사로 무마하려는 본능적인 문화형태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죄책감, 두려움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롬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슬퍼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성도에게 축복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간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하다. 그들은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설교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예수님이 큰 소리로 나오라고 소리치신 이유는 이미 천국의 영광을 맛본 나사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2) 어떤 의미에서 축복인가? 

(a) 죽음은 땅 위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쉬게 해 준다.

직장/사업, 육아.... 인생살이는 고민거리와 고난의 연속. 이 모든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되는 축복

(남은 가족은? 그래서 미리 대비, 하나님께 맡김)


(b) 죽음은 우리를 좋은 세상으로 인도한다.

누구나 깨끗한/공명정대한 사회를 꿈꾼다. 거짓말, 사기, 미움, 범죄, 오해가 없는 그런 곳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타락한 인간 본성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이 우리를 그런 세상으로 인도한다. 성도가 죽을 때, 즉각적으로 주의 임재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곳은 죄와 고통과 불안함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세상이다. 그곳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세상이다.


(c) 죽음 후 성도는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게 될 것이다. 

요일 3:2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We shall be like him.

죽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이 세상에서 시작된,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한 성화를 완성시킬 것이다. 칭의-성화-영화 


어떤 면에서 예수님과 같이?

(ㄱ) 지식 면에서!

정보 홍수 시대이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불완전하게 보고 불완전하게 안다. 많이 안다고 해도 단편적인 지식과 이해에 불과하다. 

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죽음 후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왜?’의 답답함)

고전 13:12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ㄴ) 사랑 면에서!!

사랑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마귀? ‘자기 자신’ 아닌가!

죽을 때까지 ‘자기’가 살아서 꿈틀댄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언젠가 죽음 이후에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4. 결론: 죽음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나?

죽음이 원수일 뿐인가? 죽음이 축복이기도 하나?

그것은 당신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고, 침례를 받고, 착하게 사는 것 이상이다. 

예수님과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느냐를 의미한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비로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이자 구주로 모신 삶을 살수 있게 된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마지막 원수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시편 23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당신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나? (앞에서 말한 죽음의 과정)

이 세상의 악이 주는 온갖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가고 있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당신을 안위하고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지? (지금 살아가는 동안 & 죽음의 순간)

달리 말하면 당신은 분명히 예수님을 영접했나? 예수님을 마음에 맞아들이고 그 분이 당신의 마음, 정, 의지를 주장하도록 내어 드리고 있나?

죽음을 잘 준비하자.


9/26/202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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