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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고린도전서 강해 38: 예언은 교회적으로 유익한 은사

본문말씀 : 고전 14:1-40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1.08.15
  • 관리자
  • 21.08.21
  •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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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V8M12raF_BQ&t=24m23s


고린도전서 강해 38

예언은 교회적으로 유익한 은사

고전 14장 발췌


지난 주일에 방언과 예언에 대한 고린도전서의 맥락과 신앙생활 전체적 맥락 설명

체험적 신앙과 이성적 신앙

방언 은사는 개인적으로 유익한 은사이지만, 적절하고 질서 있게 사용되지 않았기에 문제가 일어남. 

우리는 잘 사용해서 개인적인 유익은 얻기를 바란다.

개인적 유익을 주는 방언에 비해서 교회적 유익이 되는 예언 은사에 대해서 말한다.


1. 

예언의 경험이 있는지?

예언 받은 경우: 하나님이 내 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말에 너무나 위로가 되고 힘이 생김

예언한 경우: 매번 설교를 그런 심정으로 준비하고 전한다. 


예언은 장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이다. 

‘예언하다’의 그리스어 ‘프로페튜오’는 "전하다, 미리 말하다, 대신 말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는 대언 혹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예언이다.

그래서 장래에 관한 일만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말한다. 격려와 위로, 때로는 경고와 책망.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경우도 있다.


2. 고린도교회의 맥락

(1) 누구나 다 예언의 은사가 있었던 것 같다.

14:31 여러분은 모두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배우고, 권면을 받게 됩니다.

와~ 부럽다!? 성령 사역을 하는 교회는 이런 목표로 예언자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언이 대언이라면, 예언의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예언할 수 있고, 그런 것을 정상이라고 봐야 한다.


은사, 직분, 사역의 구분

12:4-6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섬기는 일(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일의 성과(사역)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괄호는 개역개정)

은사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은사가 더 자주 강력하게 나타나는 사람을 직분자(은사자, 은사 사역자)로 세운다. 그런 직분을 가지고 여러 일을 하는 경우를 일의 성과/사역이라고 한다. 


보통 예언의 은사라고 하면 직분과 사역을 떠올린다. 놀라운 예언의 은사를 가진 누구누구.... 

그러나 더 현실적인 것은 모든 성도가 예언의 은사를 잘 활용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서 교인들을 세워나가고 덕을 끼치는 것이다. 매번/자주가 아니더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대하고 기도하다 보면, 그런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서 그것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게 된다. 

(2) 예언의 목적은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14:3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말?) 그는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14:4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끼칩니다.

예) 어떤 예언사역자에 의하면, 예언의 97%는 권면과 위로의 말씀이고, 3% 정도만 회개와 책망의 말씀이라고 한다.

예언은 다른 사람을 세우고,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 

예언을 한다면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고, 무례하게(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잘못을 지적하고,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면, 이는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다. 명령조/권위적 목소리?

성령의 역사라 하더라도 아주 위험한 사용이다. 아이가 날카로운 칼을 든 셈.

방언의 위험은 저리가라고 할 정도다. 


(3) 예언의 내용은 분별해야 한다.

14:29 예언하는 사람은 둘이나 셋이서 말하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분별하십시오.

(a) 분별과 해석이 필요하다. (적중률로 판단?)

-가짜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가짜 방언과 동일한 이유. 자신이 영적인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거나, 남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장난이다. 자기 생각/짐작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과대포장 한다. 위험천만!!


-애매모호한 예언

많은 경우 애매모호한 표현/성경적인 표현으로 주신다. 딱 떨어지는 구체적인 표현이 아니라.

예) 당신 앞에 푸른 강이 흐르는데, 그것은 생수의 강입니다...


-지나간 예언

작년에 들은 예언인데, 그 사이 상황이 바뀌어서 예언의 내용도 바뀌었는데, 계속 붙들고 있는 경우...


-귀신의 장난일 경우도 있다. 

조상신으로 가장하고 나타난 귀신(조상은 여기에 없다!). 과거와 현재는 족집게라도 미래는 모른다.


(b) 분별의 기준

-성경과 일치하는지? 이것도 조심해야. 마귀도 성경 인용(예: 광야의 유혹)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지?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알 듯이,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 교회에 덕이 되는 일인지?

-참된 예언은 들을 때 평안, 위로, 기쁨이 온다. 

-비록 책망이라도 거룩한 통회자복은 있지만 염려, 불안은 없다.

-우리의 관심사는 길흉화복, 하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영혼. 그래서 위로, 격려, 회개 후 바로 세움 등이 하나님의 주 관심사이다. 그래서 길흉화복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특히 대가를 바란다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예언이라고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잘 분별해야 한다.

중요한 주제는 최소 2~3명이 그 주제에 대해 함께 기도하면서 분별해야 한다. 


(c) 해석에 필요한 자세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전달되는 과정이나 듣는 사람의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죄와 욕심이 개입되는 경우 틀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3. 일반 교인으로서 예언의 은사를 사용할 때

(1) 사실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받고, 또 예언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있다. 

누구의 딱한 사정을 보고 들을 때 안타까운 마음(하나님의 마음/감정)이 들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이나 본인의 경험에 근거)을 갖고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알고 계시고 있어요’ ‘하나님이 분명히 길을 열어주실 거예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이 상대에게 힘이 되었다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 주로 말의 내용보다 하나님의 마음/느낌을 자신도 느끼고 대언하는 셈이다. 


(2) 이런 은사가 더 자주 더 분명하게 경험될 때, 1인칭으로 바꾸면서 하나님을 대언해서, ‘내가 네 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너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라고 말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나 여호와가 말한다!”식으로 강압적으로 말해선 안 된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아요’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부드럽게 지혜롭게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가 아니라, 나이, 직분, 권력, 부유함의 권위로 이야기 하게 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내가 인생 살아봐서 아는데...!’ ‘내 말이 곧 하나님 말이야!!’)


(3) 교회에서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인간적으로도 말이나 물질로 위로, 격려가 되고 또 필요하지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격려로 느껴지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만 한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알고 계시는구나! 이것만 알게 되어도 없던 힘이 생긴다.

더 나가서 나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신다면 더 힘이 된다.


사람의 도움은 기억에 남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만 남게 되기를...

그 때 그 분의 도움을 잊지 못합니다 -> 그 때 그 분을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지 못합니다.

예) 리빙스턴 선교사. 25년 동안 아프리카 선교

나중에 원주민에게 “그가 당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습니까? 그에게서 어떤 설교를 들었습니까? 무엇을 배웠습니까?” 

원주민들은 “우리는 그가 가르쳐준 성경공부 내용이나 설교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4) 목장에서 나눔을 하거나 누구와 대화할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집중하는 연습/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해 주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감정을 느끼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시길 원하는 말을 알려주시면 그 말을 전하겠다는 심정을 임하다 보면, 예언의 말씀을 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런 예언으로 서로 위로/격려하고 교회의 유익이 되도록 하자.

1절 (이런)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

3절 (예언하는 사람은)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5절 (나는 여러분이 모두)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내 생각/판단 내려놓기

하나님의 마음/생각 느끼기

지혜롭고 부드럽게 전달하기

위로, 격려, 때로는 책망(마음 아프게)으로 유익이 되고 교회에 덕이 되게


8/15/2021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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