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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기독교의 기본 진리] 8. 왜 십자가인가?

본문말씀 : 고후 5:18-19, 마 16:21, 히 9:28, 고후 5:21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3.10.08
  • 관리자
  • 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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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 진리 8

왜 십자가인가?

고후 5:18-19, 마 16:21, 히 9:28, 고후 5:21


서론

1. 죄의 3가지 결과 복습 (1)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영의 죽음, 공허함/불안함 (2) 자기에게 속박: 죄의 종 (3) 다른 사람과의 갈등


2. 구원은 이것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1)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죄 용서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2) 더 이상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듭나서 새 성품을 얻게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3) 자기를 부인하고, 서로 용서/용납하고 긍휼히 여기게 된다. 이를 위해서 교회 안에서 부딪히고 연습하면서 배워나간다. 


3. 어떻게 진행되나?

(1)은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워낙 어색해서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2)와 (3)은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다. 

(1)은 ‘받은 구원’(과거, 영의 구원)이라면 (2)와 (3)은 ‘받는 구원’(현재, 혼의 구원)이라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빌 2:13).

이런 큰 틀을 이해하면서 오늘은 (1)에 관해서 살펴본다.


1. 십자가의 중심성

왜 기독교는 십자가를 그렇게 강조하나?

(1)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자기들의 신념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시적인 상징을 가진다.

예) 불교 卍: 원래 석가모니의 가슴에 나타난 길상(吉祥: 아름답고 착한 징조)이라 하여 부처의 공덕이나 윤회, 성덕의 상징이라고 한다.


(2)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상징한다.

천주교의 십자가: 십자고상(十字苦像)이라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형상이다. 예수님의 고난을 통한 구원이 초점이다. 

개신교의 십자가: 예수님 상이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것이 초점이다. 

서로의 강조점을 존중하면 좋겠다. 특히 개신교의 십자가는 너무 이미지화 되어서 십자고상의 의미를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교회나 개인적으로도 아름다운 십자가 장식을 한다. 그러나 사실 십자가는 종교의 상징으로 채택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끔직한 사형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고기 모양도 사용했었다. 익투스(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그러나 결국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가 되었다. 왜 그랬을까? 

십자가는 하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이고, 십자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커다란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꿰뚫는 핵심 주제였다.


(3) 구약시대

각종 제사를 드리면서 피 흘리는 희생제물을 통해서 하나님께 용서받고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이 머리에 박혔을 것이다. 또 선지자들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고난 받는 어떤 사람에 대한 예언을 여러 차례 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사야 53장이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십자가의 의미는 구약시대부터 알려져 왔다. 제사제도로 십자가의 대신 희생제물 되심을, 선지자의 예언으로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고난당하고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해 주었다.


(4) 신약시대

(a)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명이자 운명

마 16: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지 않고, ‘반드시’(must, not will)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러 차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이제 십자가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요 17:1)라고 하셨다. 십자가가 자신의 사명이자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b) 복음서의 기록 비중

복음서의 저자들도 십자가의 중요성을 잘 이해했다. 그래서 복음서(일종의 전기)를 기록하면서 파격적으로 생애 마지막 일주일(십자가를 지기 위한 예루살렘에 입성 ~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과도한 분량을 할애했다. 누가복음은 33%, 마태복음은 40%, 요한복음은 50%, 마가복음은 무려 60%! 예수님의 삶에 십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임을 알았고 또 알리기 위해서다.


(c) 서신서의 명시적 진술

복음서가 암시적으로 말했다면, 서신서는 드러내 놓고 명시적으로 말한다.

고전 2:2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밖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중간 정리

십자가가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까지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다. 그래서 기독교는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물로 삼았다.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기독교 신앙은 열심히 살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깊은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자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불가능한 죄인이기에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심으로써 죄 값을 치루시고,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신앙이다.


그 후에 열심히 살아가고, 깊은 지식을 추구하고,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이다. 십자가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신앙이다. 그래서 십자가 없이는 기독교도 없다.


2. 십자가의 의미

원죄로 죄책과 죄성이 ‘전가’되었다. 억울한가? 다행인 건 원죄만 전가되는 게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도 전가되었다. 십자가의 의미는 여러 가지이지만 두 가지만 살펴본다.


(1) 죄를 대신함

(a) 속죄일: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위한 속죄일. 숫염소 2마리. 한 마리는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특별한 행동을 했다. 

레 16:21-22 살아 있는 그 숫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그 모든 죄를 그 숫염소의 머리에 씌운다(전가). 그런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숫염소를 빈들로 내보내야 한다. 그 숫염소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다. 이렇게 아론은 그 숫염소를 빈들로 내보낸다.

숫염소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죄를 전가한다. 그 숫염소는 그 모든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간다. 죄의 처절한 대가를 대신 치른다는 의미이다.


(b) 하나님의 어린 양: 말라기 선지자 이후 사백 년 만에 등장한 하나님의 사람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했다.

요 1:29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속죄일의 숫염소/양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이다. 전가된 이스라엘 자손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간 숫염소처럼, 전가된 세상 모든 사람의 온갖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 죽음으로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세상 죄 용서를 위해서 바쳐질 희생 제물!


(c) 구약 시대의 희생 제물은 소, 염소, 양과 같은 동물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2) 죄가 되심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예수님은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정도가 아니라 죄가 되셨다고 한다.

고후 5:21 (개역개정)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NIV) God made him who had no sin to be sin for us, so that in him we might become the righteousness of God.


(a) 다른 사람의 죄의 대가(징역, 벌금, 명예훼손)를 대신 지불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죄의 대가가 죽음일 때는 더 그렇다. 놀랍고 멋진 희생이다. 그러나 ‘죄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말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 대신에 손해를 보고 고생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진짜로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남의 죄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것이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만이 아니라 죄인/죄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죄를 알지도 못하는, 죄가 없으신 분이! 


(b) 달리 말하면 저주가 되셨다고 한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말로는 ‘저주를 받음’, 원문으로는 ‘저주가 됨’(becoming a curse) 더 와 닿는다.


십자가의 의미는 (a) 죄의 대가를 대신 받음과 (b) 죄(저주)가 되심이다.


(3) 십자가를 지신 상황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겪으신 상황을 그려보자.

(a)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 온 세상의 모든 역사(과거/현재/미래)의 죄가 전부 예수님에게 지워졌다. 예수님은 자원해서 그 모든 죄를 자신의 몸으로 담당하시고 책임을 지시기로 하셨다. 예수님은 그 모든 죄를 자신의 죄로 삼으셨다.


(b) 그 시각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위로/격려/지원의 말이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필요할 때인데. 죄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영의 죽음)이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절규하셨다.

마 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셨고(요 17:5), 이 땅에 계실 동안에는 끊임없이 아버지와 교제를 누려왔던(요 5:19) 예수님이 그 순간 아버지로부터 싸늘하게 버림을 당하셨다. 달리 말해서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지옥으로 보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에서 오는 무서운 영혼의 죽음과 고통을 겪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으셨다.

예수님은 죄의 결과인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형법을 우리 대신 당하셨다.


(c) 그런데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승리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다 이루었다”(요 19:30) 예수님의 사명이자 운명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려는, 그래서 예수님을 죄의 구원자요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은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시려는 그 일을 다 이루신 것이다.


(d) 그것을 증명해 보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 막은 두터운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마 27:51) 죄로 인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갈라 막아야만 했던 휘장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모두 사라졌다. 예수님이 천국 문을 열어주신 것이다. 십자가 죽음 후 3일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이 모든 것을 증명하셨다.


3. 용서에서 화해로

십자가는 하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이고, 십자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커다란 은혜다.


(1) 용서에 대한 많은 설교를 들었다. 용서가 무엇인가? 나 자신을 위해서 용서하자. 용서는 쌍방이 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사과와 상관없이 할 수 있다. 용서와 화해는 다르다. 그래서 화해가 두려워서 용서를 못하겠다고 하지 말자 등등.


(2) 하나님은 죄인을 이런 식으로 용서하셨나? 즉, 용서만 하셨나? 그렇다면 어떻게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겠나? 아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다고 말하지만, 더 정확히는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화해’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해의 손을 내미셨다.


고후 5:18-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의 대가가 다 지불되고 우리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완전히 관계를 회복하시길 원하셨다. 


(3) 용서했지만 냉랭한 관계, 용서했지만 만나지는 않는 관계, 용서했지만 화해하지는 않고 살아가는 관계....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화해하시고, 우리의 모든 지위/자격/특권을 복권해 주셨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었다! 


(4) 관건은 우리의 반응이다. 화해는 쌍방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셨다. 이제 우리 각자가 회개로 그 손을 잡고 화해할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게 된다. 회개하고 그 손을 잡은 사람은 단절된 상태에서 관계가 회복된 상태, 모든 지위와 자격을 회복하는 상태로 바뀌게 된다. 


결론

하나님은 죄의 심각한 결과를 하나하나 해결해 주셨다. 

그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이다. 죄를 대신하고, 죄가 되심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사랑한다. 

십자가를 통해서 용서뿐 아니라 화해를 바라며 내미시는 손을 붙잡자.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나가자.


2023/10/08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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