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1.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요 5:5-6, 창 4:8-9

시리즈 서론: 왜 ‘나와 너’인가?

(1)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관계’이다.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앙과 상관없이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사랑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이다. 그러나 관계는 쉽지 않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기대, 상대를 도구로 대하는 자세로 인해서 실망과 상처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2) 그런 우리에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깊은 울림과 도움을 준다. 마르틴 부버는 20세기 유대인 철학자이자 종교사상가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관계 속에서 탐구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 『나와 너』는 세계적인 교양서이다. 그는 세상에는 '나와 너'의 관계와 '나와 그것'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a) ‘나와 그것’의 관계는 대상화된 관계이다. 

상대방을 하나의 대상(object), 도구(tool), 또는 기능(function)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의 존재 전체나 내면, 고유함을 보지 않고, 내 기준에 맞는가,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가 만을 보는 방식이다. 이런 관계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낳는다.

(b) ‘나와 너’의 관계는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관계이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 전 존재를 건 인격적인 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시는 관계이고, 우리가 서로를 대하기를 바라시는 관계이다. 인간의 참된 가치를 알려주고 진정한 삶을 살게 해 준다.

(3) 신앙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곧 하나님과의 ‘나와 너’ 관계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관계 방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그 관계는 바로 ‘나와 너’의 관계이다. 

이 설교 시리즈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인가?” “나의 삶과 신앙은 진정한 관계를 회복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단지 부버의 철학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다. 그래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설교하려고 한다.

1. 하나님은 우리를 ‘너’라고 부르신다

(1)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구로 보시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대해 주신다. 아담을 지으실 때, 에덴동산에서 부려먹을 사람을 만드신 게 아니라, 먼저 만드시고 보시기에 기뻐하셨다. 그 후에 그에게 보람있는 할 일을 주기 위해서 에덴동산을 만들고 관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구로 여기지 않으시며, 존재로 대해 주신다. 

(2) 마르틴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In the beginning was the relationship)(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의 패러디)라고까지 말했다. 이 말은 (a) 인생에서 관계가 가장 중요하며, (b) 전 존재를 건 ‘나와 너’의 관계를 맺을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다. 

(3) ‘전 존재를 건 관계/존재 전체를 건 관계’라는 말은 온 마음을 다해,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자세 정도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a) 마음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로 대하는 태도

상대를 대할 때 내 마음과 관심의 일부분만이 아니라 온 마음과 인격으로 대함

예: 대화할 때 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보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며 듣는 자세

(b) 조건 없이 관계에 자신을 내어주는 용기

계산이나 기대라는 조건 없이, 즉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하든 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계

예: 상대가 나를 실망시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그 사람의 고통에 함께 머무르기

(c) 자기 중심성의 포기

나를 주장하는 방식의 관계가 아니라, 나를 ‘열어주는’ 방식의 관계

예: 내 입장을 고집하는 대신, 상대의 말을 정말로 들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너’라고 부르시며 이렇게 대해주신다.

2. ‘나와 너’의 관계로 부르시는 예수님(요 5:6)

베데스다 못은 병자들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거는 곳이다. 가끔 천사가 내려와서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 병자는 38년 동안 베데스다 못 근처에 있었다. 사실 이 병자는 사회로부터 ‘그것’으로 취급받았다. 무능한 자,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자, 사람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주변인. 베데스다는 병자조차 서로를 경쟁자로 바라보게 만드는 비정한 곳이었다. 철저히 ‘나와 그것’의 관계의 장소다. 상대는 사랑할 존재가 아니라, 밀쳐내야 할 경쟁적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그것’이 아니라 ‘너’로 부르셨다. 그에게 다가가셔서 “낫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이 질문은 단지 낫고자 하는 의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병고침이 아니라, 그의 마음, 좌절, 절망을 보신 것이다. 그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두신 것이다. ‘나-너’ 관계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도 그렇게 대해 주신다.

3. ‘나와 그것’의 관계로 대하는 가인(창 4:9)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시자, 퉁명스럽게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 말 속에는 미움, 경쟁심, 무관심, 책임 회피, 타인에 대한 배제가 담겨 있다. 가인은 더 이상 아벨을 ‘너’로 대하지 않고, ‘그것’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벨을 더 이상 하나의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지 않았다. 함께 나누고 대화할 대상이 아니라, 질투의 대상이자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본 것이다. 그는 아벨의 존재의 소중함이나 그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감정만을 기준 삼아 판단했다. 그렇게 아벨은 더 이상 '형제'가 아니라, 질투심 속에서 이용되고 무시되는 ‘그것’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이 세상은 대부분 ‘나와 그것’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직장에서는 역할과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가정에서도 기대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다툰다. 교회에서도 상대방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할 때는 소중히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닫는다.

이런 관계는 고정된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더 상처 받기도 한다. ‘나와 너’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와 그것’으로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에 당황하고 상처받는다. 

4. ‘나와 너’로의 부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김춘수 시인은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 즉 ‘나와 그것’의 관계에 불과하던 존재에게, 내가 마음을 열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꽃이 되고, 존재가 되고, 의미가 되고, ‘나와 너’의 관계가 시작된다.

예수님도 38년 된 병자를 그렇게 만나주셨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쓸모없는 환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으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를 ‘너’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런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5. 적용 질문

(1) 나는 하나님과 ‘나와 너’의 관계인가?

하나님은 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개인을 인격적으로 부르신다. 내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 있는가? 기도 중에, 말씀 묵상 중에, 예배 중에, 혹은 어떤 사건이나 만남 속에서 "내가 너를 안다"는 하나님의 따뜻한 부르심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혹시 세상에서 늘 ‘그것’으로 취급 받느라, 하나님의 부르심마저 무뎌진 것은 아닌지? 

혹시 하나님도 나를 ‘그것’으로 대하신다는 오해가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하나님을 ‘그것’으로만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나님이 나를 ‘너’라고 부르셨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자. 하나님은 오늘도 이름을 부르신다. 언젠가 들리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한편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기도를 해 보자. “하나님, 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라고 여쭤보자. 복음서를 천천히 읽으면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묵상하자. 그런 장면 안에 자신을 집어넣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보자.

실천: 이번 주, 하루에 20분 조용히 앉아 “하나님, 저는 누구인가요? 하나님, 저를 아시나요?”라고 기도해 보자.

(2)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나? 

‘나와 너’의 관계인가? ‘나와 그것’의 관계인가? 수단인가, 존재인가?

내가 누군가를 대할 때,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해주는 사람인지, 혹은 얼마나 유익한지로만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직장에서 동료를 업무처리 능력으로만, 가정에서 배우자를 경제적 기여나 역할 수행으로만 보지 않는가? 교회에서도 누군가를 교회 일 많이 하는 사람, 맡은 일 잘 하는 사람으로만 보지 않는가? 그 사람의 입장, 아픔, 존재 자체엔 관심이 없는 건 아닌지?

실천: 오늘 내가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의 몸짓 -> 꽃)

한국 사회는 직함(김부장), 역할(택배 기사님), 관계(영희 엄마)로 부르는 데 익숙하다. 그러기 때문에 ‘나와 너’보다 ‘나와 그것’의 관계가 더 익숙한 것 같다. 그래서 갑자기 이름 석 자를 부르는 것은 너무 어색할 수 있다. 그래서 직함(김부장)이나 관계(누구 엄마)로 부르더라도, 그 안에 그 사람의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담아 부르자.

예) 김집사님: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

기능적인 호칭이 아니라, 관계적 존중과 인격적 관심을 담아서 불러보자.

그런 부름 한마디가 상대방을 ‘너’로 대하는 거룩한 관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6. 마무리

신앙생활의 본질은 ‘관계’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과의 인격적 관계, ‘나와 너’의 관계로 부르셨고, 이제 이런 관계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고 하신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예수님의 음성 앞에 서 보자. 단순히 병을 고쳐 주시려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존재 그 자체로 대/하시는 음성이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사람을 전 존재로 대해 보자.

7/13/2025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