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2. 왜 '나-너' 관계가 어려운가?

눅 10:38-42, 마 11:28-29

서론

지난 주 설교.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신앙생활/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마르틴 부버는 ‘나-너’ 관계와 ‘나-그것’ 관계로 나누었다. ‘나-그것’ 관계는 상대를 대상화(도구/기능) 하는 관계, ‘나-너’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격적 관계라고 했다. 

아마도 설교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1) 나-그것이 나쁘기만 하나?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나?

(2) 나-너가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왜 실천이 힘들까?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1. ‘나-너’와 ‘나-그것’의 관계 설정

(1) ‘나-그것’ 관계가 나쁘기만 한가?
사람을 도구, 기능으로 여기는 ‘나-그것’의 관계. 그러나 세상은 이런 관계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책임감, 열심이 강조되고, 효율성과 생산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런 관계 없이는 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2) 하지만 ‘나-그것’ 관계만 있을 때 인간 사회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타인을 인격적인 ‘너’로 대하지 않고, 도구와 기능으로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강화한다.

예) 가정: 아버지가 돈을 못 벌면 무능한 존재로 치부되고, 어머니가 살림을 잘 못하면 비난받고, 아이가 공부 못하면 문제아로 전락한다.

사회: 일 잘 못하는 사람, 장애인, 노인 등은 쓸모없는 존재처럼 배제된다. 

교회: 교회 일을 많이 하거나 리더십이 있으면 인정받지만, 그렇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사람은 존재감 없는 성도로 대하기 쉽다.

결국, '나-그것' 중심의 사회는 살벌한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다.

부버는 '나-너' 관계에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그것' 중심의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더라도,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3)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나-그것’만 있으면 기능은 유지되지만, 인간다움은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나-너’만 있고 책임이 없다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나-그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나-너’를 통해서만 인간은 온전해진다.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하는 문제이다.

(4)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눅 10:38-42)

(a) 본문 설명: 마르다는 예수님을 접대하는 일로 바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다가 보기에 마리아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였을 것이다. 음식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있는데... 그래서 동생이 자신을 거들수 있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너무 많은 일로 염려한다고 하시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한 것이라고 답하셨다.

(b) 마르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손님으로 모시게 된 예수님에게 최고의 것으로 접대하길 원했다. 그런데 마리아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너무 얄밉다. 손님 접대라는 현실적 책임을 외면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직장이나 가정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들 자기 몫을 해야 잘 돌아가는데, 그리고 나는 내 몫을 하기 위해서 120% 애쓰는데, 누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얌체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 편, 마르다는 예수님을 ‘나-그것’의 관계로 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과 전 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보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혹은 예수님을 섬기는 자신(메뉴, 음식 맛, 세팅)이 더 중요한 지도 모른다. 최고의 것으로 접대했다는 자기 만족이 더 중요한 지도 모르겠다.

(c) 하지만 마리아는 ‘나-너’의 관계로 예수님을 대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분의 존재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관계의 대상화(대상, 도구, 기능)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중요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분과 전인격적 관계를 맺는 게 더 중요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런 행동을 ‘좋은 몫을 택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d) 그러면 음식은 누가 준비하나? 

모두가 ‘나-너’ 관계만 맺으면 돈은 누가 벌어오고 밥은 누가 하나? 

예수님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 대신에, 우선순위를 바로 잡으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섬김을 폄하하지 않으셨다. 다만, 역할과 책임에 짓눌려 예수님과의 ‘나-너’ 관계를 놓치고 있는 그녀를 부드럽게 초대하셨다.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 반찬 한 두 가지만이라도 족하다. 나와 함께, 이 순간을 함께 하자고 초대하셨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귀하다!)에 지나치게 몰두하느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나-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필요한 일이지만 우선순위를 놓친 것이다. 

예) 교회 일 하느라 예배에 집중하지 못함

결론: 둘 중에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한 게 아니다. 세상은 ‘나-그것’을 잘해야 한다. 우리도 그런 실력을 키워야 하고, 잘 하는 사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으로만 돌아가는 기계 세상이다. 둘 다 필요하되, 우선순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왜 '나-너' 관계가 어려운가?

머리로는 ‘나-너’ 관계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겠는데, 왜 실제 삶에서는 실천하기가 어려울까?

나는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 지 생각해 보기를...

(1) ‘나-그것’ 관계에 너무 익숙해서

효율성과 생산성의 기반 위에서 돌아가는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다 보니, ‘나-그것’이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은 한 번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예) AI 기술에 대처를 못한 애플사의 몰락?

대학 입시에서 수능점수 1점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요즘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고 전 세계에 K붐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살다보니, 우리는 타인을 ‘너’로 만날 여유를 잃게 된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역할(일을 잘하는 동료), 성과(성적이 좋은 아이), 유용성(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만 보게 된다. 이처럼 ‘나-그것’ 관계가 몸에 배어, 타인의 마음과 존재를 헤아릴 여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예) 내가 돈 벌어다 주는 기계야? 내가 밥만 하는 사람이야?

(2) ‘나-너’ 관계의 경험 부족

우리를 보고 배운다.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그런데 진정한 ‘나-너’ 관계를 눈으로 보거나 경험해 본 적이 드물기 때문에,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관계라는 걸을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서부터 ‘나-너’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대신에, 성적이나 착한 행동으로 평가받으며 자란 경우가 많다. 대놓고 말을 듣거나 은근히 전달되는 메시지(음식 메뉴 차이)로 알게 된다. 교회에서도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자랐다.

우리는 ‘나-너’ 관계의 따뜻함을 경험할 기회가 적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며, 나로 하여금 꽃이 되게 해 준 경험이 많지 않다.

이런 경험 부족이 ‘나-너’ 관계를 낯설고 어색하게 만들고, 타인을 역할이나 성과로 판단하는 ‘나-그것’ 관계에 더 익숙하게 되었다.

(3) 힘들어서

관계를 맺는 일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다.

누군가와 ‘나-너’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을 드러내야 하기도 하고, 감정/시간/돈 소모가 요구되기도 한다. 시도해도 원하는 관계를 맺게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시도하지 않고, 시도해도 금방 포기하게 된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 결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게다가 이전에 관계의 상처와 아픔이 있다면 더더욱 시도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나이스하게 대하지만 실은 기대도 하지 않고 따라서 실망도 하지 않는다. 이게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친절하되 적절한 거리두기’(Courteous yet distance)와는 다르다. 

적당~한 거리는 사랑과 애정마저 없는 거리다. ‘나 너에게 기대 없고 사실 관심도 없어. 그러니까 너도 이 이상은 들어오지 마’ 

이러다보면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나-그것’ 관계로 살아가게 된다.

3. 어떻게 해결?

‘나-그것’에 너무 익숙해진 삶, ‘나-너’의 경험 부족, 또 힘듦은 우리를 ‘나-너’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이것들은 결국 죄와 죄의 결과들이다. 죄가 우리를 ‘나-너’ 관계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예수님은 이런 장애물을 넘어서는 복음의 소망을 선포하신다.

마 11:28-29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꽃)로 부르시며, 자신과의 인격적 관계로 초대하신다. 장애물이 되는 모든 짐을 자신이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해결할테니, 너는 나에게로 와서 그 짐은 나에게 내려놓으라고 초대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자신과 ‘나-너’ 관계를 맺자고 초대하신다.

이런 복음의 소망은 우리를 변화시켜, 힘겨운 세상에서도 ‘나-너’ 관계를 실천할 힘을 준다.

4. 결론: 구체적 실천

(1) 하나님과의 관계

하루 10분 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저를 어떻게 보세요?”라고 묻기 

마태복음 11:28-29 묵상. 예수님이 당신을 ‘너’로 부르시는 음성에 귀 기울여 보기

거울을 보며 “나는 하나님의 소중한 ‘너’(자녀)야”라고 말해보기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역할이나 성과로 평가하지 않기로 결심하기

(2) 다른 사람과의 관계

판단 멈추기: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순간 멈추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소중한 ‘너’야”라고 여기자. 특히, 내가 실망했던 사람에게 그렇게 대해 보자.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보기: 듣는 중간에 판단, 평가, 충고, 수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으면서, 그 사람을 존재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

7/20/2025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