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교회

주일설교

고린도전서 강해 12 :성실과 판단

본문말씀 : 고전 4:1-5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0.11.22
  • 관리자
  • 20.11.23
  • 185

<27분 44초부터> 본문 말씀이 시작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NDYPuCTgtc


고린도전서 강해 12

성실과 판단

4:1-5


추수감사주일과 침례식. 참 다행/감사. 한편 대유행이 오지 않도록 기도/주의

회원 간증(김춘애, 김상호/임선영[다음 주일])


고린도교회의 분쟁/분열의 이유

(1) 예수님께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인간 지도자에 초점 맞춤(1장)

(2) 하나님의 지혜[십자가]가 아니라, 자신들의 지혜/경험을 의존(2장) 

(3) 지도자마다 역할의 차이[심기, 물주기]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함(3장) 

(4) 사람을 평가/판단하는 기준이 다름(4장) -> 도대체 영적 지도자는 어떤 존재냐? 어떻게 평가해야?


오늘은 첫 번째 설명: 영적 지도자는 (1)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이다.

4:1-2은 직분자로 세울 때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으니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충성해라!! ㅎㅎ

교회에 충성, 목사에게 충성? 아니다. 하나님께 충성 그래서 신실성!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1) 교회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비밀(복음, 예수님)을 맡은 관리인이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는 신실해야 한다. 성실하게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

(2) 반면에, 교인들은 교회의 지도자를 함부로 판단(심판)해서는 안 된다.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성실/신실과 그들에 대한 판단이라는 점에 대해서 살펴본다.


1. 성실/신실

(1) 나는 지도자가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없다? 목사, 목자, 교사가 아니니까? 

비록 구체적으로는 교회 지도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라서 교회 지도자를 지칭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고 본다. 싫다? 자기 선택!~~


(2) 관리인

일꾼/다른 단어 (1) 3:5 집사, 시중 드는 사람, 웨이터 (2) 4:1 하인, 밑바닥에서 노 젖는 노예(벤허)

관리인: 오이코노모스(이코노미/경제), 청지기, 호텔 지배인, 자산 관리인
한국 교회의 사찰집사/관리집사??

두 가지 특징: 자기 소유 아님(소유권 없음), 맡은 책임 있음(주인의 필요를 채우는/수익을 내는 책임)


바울은 자신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추앙을 받아야 할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낮은 사람임을 상기시킨다. 

교회의 주인은 누구? 하나님! 교회의 담임목사는 누구? 하나님! 나는? 부목사!

교회 지도자는 결국 주인이신 하나님의 필요/수익/소원/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 자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표자로서의 책임, 주인의 이익을 위한 책임

목자, 교사 등도 마찬가지!!


(3) 그런데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이다.

주신 일/맡은 역할을 신실하게 성실하게 꾸준하게 감당하기만 하면 된다. 


성실/신실함이란? 

약속을 잘 지키는 것! 하겠다고 한 일/주어진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 (책임지려고 애쓰는 것)

하나님과 한 약속을 잘 지키는 것(지키려고 애씀)이 하나님의 비밀/복음을 맡은 관리인인 교회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예) 예배 헌신의 시간. 하나님과 약속하는 시간

요즘은 앞에 나와서 하는 헌신이 사라졌다. 나의 책임!! 오늘!!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더 많은 사람 앞에서 약속할수록 지킬 확률이 높다.

결혼서약, 침례식, 임직서약

예배시간 약속(11시), 목자/목녀로서의 책임, 목장모임(정기적), 말씀의 삶 등등


스스로 돌이켜 보자.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인가? 내가 한 약속보다 상황이 더 우선인가?

한번 말한 것은 끝까지 하는 사람인가?

또한 남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을까? 


(4) 정말로 약속만 지키고(신실), 성과는 없어도 된다는 말인가?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좀 이상하다.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수익이 아니고, 신실함만 있으면 된다?

오너와 전문 경영인 관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문 경영인은 오너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경영을 해야 한다. 아니면? 해고!!

그런데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뿐이다? 나는 매일 출근.... 신실하게 경영했는데?


신실함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익(열매) vs 신실’이 아니다. 그런 비교를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신실함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열매를 얻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땀/눈물/피를 흘리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요구하는 것은 신실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의 성취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이다. 심고 물주는 일을 성실하게 할 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때 반드시 하나님이 성과를 주신다. 하나님을 위한 성과.


2. 판단

질문: 그러면 누가 정말 신실한 하나님의 종인지 어떻게 판단하나?

자격이 아니라 능력 면에서 내가 판단할 수 있나?


판단/평가/심판(!)의 3주체

(1) 다른 사람

우리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너무 큰 비중을 두며 산다. 

연예인은 인생의 가치 전체를 남들이 평가/인기에 둔다. 피곤하다. 마음의 병이 많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그렇다. 안타깝다.


그러나 남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남의 평가는 정확할 수 없다.

따라서 남들의 ‘부정확한’ 평가에 인생의 가치를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인이나 세상 법정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3절 상: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완전히 무시하라? 노!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가 생각도 해 봐야 한다. 아니면 발전이 없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은 피하라.


(2) 자신

자신의 평가도 정확하지 않다. 바울은 ‘나도 나 자신을 심판(평가)하지 않습니다’고 말한다(3절 하).

왜 이런 말을 하나?

마음(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지만, 꼭 그렇다고 자신이 의롭다/잘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4절). 중요한 포인트!!


인간의 양심! 배우지 않아도,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옳고 그른 것을 아는 마음. (성령님)

보통 양심대로 살지 못해서 괴롭지만, 이러한 양심도 부정확할 때가 있다. 

심한 경우, 명백히 잘못 판단/행동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종교/이념 등 초월적 가치(금전적/이기적이 아니라고 여기는)를 가지고 실수할 때가 많다.

예) 바울: 종교적 신념(예수는 엉터리, 나사렛파는 이단이라는 유대교의 신념)에 의한 양심을 가지고, 사심 없이(금전적 이익, 지위상승 등) 교회를 핍박했다. 양심대로 했지만...

예) 목회자의 양심을 걸고...? 실은 자기 자신의 아집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왜 양심이 불완전?

양심마저도 자기중심/자기 의에 휘둘린다. 우리는 부패한 죄인!! 

누구를 돕는 일, 아주 양심적이도 선한 일조차도 부패함에 영향받을 수 있다.

엄청나게 도움을 주고, 그 사람을 장악하려는/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상한 욕구가 작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이만큼 도움을 주었으니까 평생 고마워해야지...)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야 한다!!

말씀을 사심(자기애)을 내려놓고 읽고 받아들여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오랜 훈련/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 하나님

(a)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숨겨진 행동과 동기를 아신다(5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그날까지, 다른 사람도, 자신도 나를 최종 심판할 수 없다. 정확하게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만이, 우리가 주님께 드린 약속/결단을 지키기 위해서 바쳤던 숨은 희생과 기도를 알아주실 것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만이, 남들이 오해했던 숨은 동기를 칭찬해 주시고, 오해로 인하여 받은 상처를 위로해 주실 것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만이, 비록 결과가 안 좋았다 할지라도 동기가 순수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이다. 

심판 날에 하나님만이, 남들에게는 비까번쩍하게 보였지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에,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칭찬/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한 모든 행동들은 불심판에서 타버리는 풀/나무/지푸라기처럼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을 고대한다.


특히 교회 지도자(목사, 목자/목녀, 교사, 어떤 종류의 리더)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신다. 

실수와 부족함이 있어도 그것을 믿고 판단을 유보해 주시길 바란다. 하나님이 세우셨으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을 믿자. 

서로에 대해서도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을 알겠는가?


3. 미리 심판하지 말라는 말은?

판단 없이는 인생을 살아나갈 수 없다. 나름대로 평가, 적재적소에 인력배치, 위험 방지,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하고... 그런데 미리 심판하지 말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1) 최종적 판단을 보류하라!!

우리는 너무 쉽게 사람을 ‘단정 지어’ 말한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이런 의도가 틀림없어’

나름대로 판단은 하지만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그런 판단의 근거는 5년 전, 한 달 전에 일어난 ‘틀림없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하나님의 역사, 사람의 마음 변화, 상황 변화....


(2) 판단하되 가능하면 긍정적인 쪽으로 하고, 가능하면 믿어주어야 한다. 

사랑은 믿어주는 것이다(고전 13: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3)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를 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잘못하면 징벌한다. 

적극적으로는 신체폭력/언어폭력, 소극적으로는 나쁜 소문 흘리기, 무시하기, 반응 안 보이기 등으로 징벌. 안 된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롬 12:19). 원수도 사랑하라.

못된 사람이라도 최종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배고프다면 먹을 것을 주고 춥다면 입을 것을 주어야 한다.


11/22/2020 주일예배

게시판 목록
고린도전서 강해 12 :성실과 판단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
고린도전서 강해 11: 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다!
고린도전서 강해 10: 지혜로운 건축자
고린도전서 강해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고린도전서 강해 8: 신앙 성장의 기준점: 자기 부인
고린도전서 강해 7: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것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