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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고린도전서 강해 6: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

본문말씀 : 고전 1:18-31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0.10.04
  • 관리자
  • 20.10.04
  • 202

<29분 38초부터 설교가 시작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oJwoCe-iCw


고린도전서 강해 6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

1:18-31(18, 21-24, 28-31)


고린도교회 내의 분열과 분쟁의 이유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보다 인간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두 번째 이유. 하나님의 지혜보다 사람의 지혜를 더 높이기 때문이다.


1. 

각자 성격/기질이 다르듯이, 신앙생활 하는 방식도 다르다. 처음에 어떤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했느냐도 영향을 미친다.

-차분하게 (성경적) 이성적으로 혹은 화끈하게 활동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는 것을 선호 혹은 함께 모여서 ‘으쌰으쌰’ 해야만 힘이 난다...

하나님/성경에 대한 믿음도, -턱턱 믿어지는 사람 혹은 체험해야만 믿어지는 사람...

-이해가 안 되어도 믿고 넘어가는 사람 혹은 이해가 안 되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사람...

각자의 스타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고집/주장 -> 다른 편을 이해 못함/비난한다면 교회의 분열/분쟁이 될 수 있다.


2.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2가지 방식에 대해서 말한다. (교회 내의 그룹일 수도)

1: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는다.


(1) 기적을 요구하는 유대 사람: 체험신앙, 내가 경험해 봐야 한다. 경험주의자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체험으로 알고 믿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이삭, 모세의 기적, 엘리야 갈멜산, 바벨론 포로 귀환 등 많은 놀라운 기적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에, 기적적인 표적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

자기 눈으로 보고 경험해야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2) 지혜를 찾는 그리스 사람: 내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한다. 이성/합리주의자

꼭 경험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납득이 되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논리학으로 무장된 사람들


(3)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더 정확히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구원자!’ 이것이 1:23 유대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사람(그리스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이다.


3. 왜 이런 반응?

(1)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끼는 것

십자가/나무에 달림은 하나님의 저주의 상징(신명기 21:23).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이 무슨 구원자?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의 표적은커녕 오히려 저주! 


(2) 그리스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

일단 말이 안 된다. 구원자는 왕/권력자/힘/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죽은 사람이 무슨 소용?

게다가 로마의 사형제도인 십자가형! 극악무도한 죄인에게만 내리는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이 구원자라니... 말도 안 된다. (죽기 전이라면 몰라도...)


(3) 우리에게는? 당신에게는?

1:24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을 때, 그 죽음이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희생의 죽음임을 믿을 때, 그를 구원하시기로 하셨다. 죄를 용서하시고, 죄값을 물으시지 않고, 오히려 새 생명을 주고, 자녀로 삼아주시기로 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며,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


(4) 그런데 그것을 설교라는, 소위 ‘어리석은 방법’으로 전하시기로 했다.(깜짝 놀랄 기적이나 놀라운 지혜에 비해서)

기적을 보거나 지혜로 스스로 알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계시: 인간이 진리를 알아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한다. 

1:21 이 세상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구원방식, 설교라는 전달방식


4. 왜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인가? 왜 설교로 전달하시나? 왜 그렇게 하셨나?


(1) 겸손한 자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a) 겸손하지 않으면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설교를 듣고 받아들일 수 없다.

겸손? 자기의 진정한 위치를 인정하는 태도.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 

내 경험과는 다르지만, 내 이해방식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이 하시기로 한 방식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겸손이다.


(b) 그러나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경험이 되기 시작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로마의 사형집행이 아니라

대속의 죽음이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셨다. (먼저 받아들고 나중에 이해/경험)


(c) 구원은 경험의 산물이 아니다. 구원은 지혜로 득도하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방법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계시를 선포/설명/설득)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구원하시기 기뻐하신다.

예) 존 웨슬리: 마르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회심

Holy Club(성경 연구, 열심/훈련), 선교사(헌신)으로도 되지 않았다. 설교를 듣고 회심!


작은 능력을 가지고 우쭐대거나, 적은 지혜를 가지고 교만을 떤다면, 십자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십자가는 인간의 교만을 걸러내는 일종의 거름망이다. 조그마한 교만도 걸러낸다.


(d) 겸손해야 한다.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e)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나? 

교회 안에서 싸우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될텐데...?

겸손을 잃으면 쉽게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서게 되고, 낙인찍고, 분파가 생긴다.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겸손한 사람만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를 붙든 사람들이라면, 

자기의 경험/지혜를 가지고 교만/자랑/판단해서 분파가 나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죄인, 모두 연약, 모두 불완전, 모두 문제덩어리, 모두 오류투성이기 때문이다...


(2)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람들이 거리끼고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 비천하고 멸시받는 자리인 십자가! 

그래야만 모든 사람, 가장 낮은 사람까지도 구원할 수 있다.


(a) 고린도교인의 구성원? 

에라스도 같은 고위층(도시 재무관)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 아니 하층민인 것 같다(1:26).

세상에서 약한 자, 비천한 자, 멸시받는 자... 노예, 해방된 노예, 소상공인

그런데 이들이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b) 성경/교회생활... 좀 알게 되면 교만해 진다.

성경을 다 안다는 식이다.

-성경. 처음에는 어렵다. 좀 익숙해지면 쉽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쉽다)

그러다 좀 더 지나면 어렵다. 더 지나면 쉽다. 좀 더 공부하면 무지무지 어렵다...(하나님과 인간이 워낙 차이가 있어서) 그런데 성경 좀 읽어봤다고 다 안다고 교만을 떤다.

-교회생활도 경험이 쌓이다보면 다 알겠다는 식이다. 오늘 새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눈 감은 채 자신의 경험으로만 보려고 한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지, 인생이 얼마나 복잡한지... 너무 단순화/일반화하려고 한다..


조금 알게 된 성경 지식, 조금 경험한 교회 경험으로 교만하게 된 고린도교인들.

자신들이 원래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잊어버렸다.


(c) 원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택하신 이유는,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심이다.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는 자녀가 된 고귀한 신분이 됨. 

잘나고 똑똑해서, 귀한 집안 신분이라서가 아니라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듣고 믿음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이들을 높이신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시려고... 

그런데 이들이 교만해졌다...


(d)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비천하고 멸시받는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온 인류의 구원자로 세우신 이유는? 그래서 세상에서 비천하고 멸시받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마치 저인망 그물과 같다(환경보호 차원에서는 안 되지만).

지혜/신분/재물...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세우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e) 따라서 인간적인 면모를 자랑하지 말라.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주님은 하나님의 지혜, 의, 거룩함, 구원이시다.


결론

우리 같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잘난 척하지 마라. 네가 경험한 방식만 옳은 것 아니다. 네가 알고 이해하는 것만 맞는 것 아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싸우고 분파를 만들지 마라.”


하지만 바울은 근본적인 근거를 말하면서 권면한다.

인간의 지혜? 

유대인처럼 능력의 표적을 보여주면 믿는다! 그리스인처럼 논리적으로 말이 되면 믿는다!

이런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구원의 방식.

이것을 설교로 전하는 방식


이런 방식은 겸손하지 않으면 못 받아들인다. 교만을 걸러내는 십자가!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까지도 구원하신다. 저인망 그물과 같은 십자가다!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답게, 사람의 지혜로, 자기 판단/머리/경험/기질로 사람을 편 가르고 나누는 마음을 내려놓자.


10/4/2020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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