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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종려주일] 울어야 할 진짜 이유

본문말씀 : 눅 23:26-31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3.04.02
  • 관리자
  • 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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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울어야 할 진짜 이유

눅 23:26-31


1. 본문 이해

(1) 빌라도에게 십자가 형 언도를 받은 후 처형을 위해서 골고다로 가시는 길이다. 예수님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혼신의 기도, 구타(얼굴에 뺨 때기와 주먹질)와 고문(조롱, 가시 면류관), 죽기 직전까지의 로마의 채찍질. 정신은 혼미해 지고 몸은 피투성이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원래 십자가 처형은 죄수가 직접 십자가(가로)를 지고 처형장으로 가는 것인데,  예수님은 도저히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구경하던 구레네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다. (나중에 아들들이 로마 교회의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축복)


(2)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보면 너무나 실감이 난다. 그처럼 비참하게 처형장으로 가는 예수님을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 개중에는 병 고침, 오병이어, 죄 용서 등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 누구도 동정이나 격려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치범들에게만 내리는 십자가 형이었기에. 그러나 용감한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3) 그런데 빌라도 앞에서도 침묵하셨던 예수님이 입을 여셨다. 이런 힘든 상태에서도 여인들에게 꼭 해 주어야 할 말이 있어서, 가쁜 숨을 가다듬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며 우는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진짜로 울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와 너의 자녀들이다.


(4) ‘자녀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 아니다. 엄청난 환란과 재앙이 너희에게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a) 그 날은 차라리 아기가 없는 사람이 너무나 부러울 정도가 될 것이다. (여인에게 아기는 최고의 행복인데, 재앙을 만나서 피신해야 하는 그 날은 아기가 있는 게 가장 불행이고 괴로운 상태) 차라리 아기가 없었더라면 할 것이다. 

(b) 그 재앙은 도무지 피할 길이 없어서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산과 언덕이 자기들에게 덮쳐서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c) 그리고 푸른 계절의 나무/푸른 나무/생나무인 예수님 자신에게도 이렇게 재앙이 닥치는데, 마른 계절의 나무/바짝 마른 나무인 너희 세대에는 얼마나 더 크고 비참한 재앙이 되겠느냐는 끔찍한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또 사순절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픈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어보니 정작 울어야 할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무슨 말씀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2. 역사적 맥락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마카비 전쟁

주전 168년 전에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유대왕국이 바벨론에 멸망당한 후, 이스라엘 땅은 페르시아, 그리스의 지배를 받고 알렉산더 대제의 죽음 이후 그리스는 4왕국으로 나눠졌는데 그 중 셀루쿠스 왕국의 잔인한 지배를 받고 있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봉기를 일으켰는데, 정말로 기적적으로 승리를 얻고 독립하게 되었다.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는데 게릴라 전을 펼친 게 유효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다. 이것이 마카비 전쟁이다.


마카비 가문의 시몬이 지도자였던 주전 141년 완전히 독립을 쟁취(바벨론 멸망 후 445년만!)하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를 대대적으로 환호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종려주일 때 백성들이 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으며 예수님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마카비 전쟁 때처럼 또다시 하나님의 기적적인 승리로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내기를 바라는 기대였다. 예수라는 저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그동안 얼마나 기적을 많이 행했는가! 이런 기대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셨다. 기대하던 액션은 없고 말씀만 가르치시다가 무기력하게 체포당하고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그리고 곧 미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쳤다.


(2) 유대 전쟁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30~40년이 지나면 마카비 전쟁보다 훨씬 더 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로마 총독들의 착취가 심해지고 결국 미납된 속주세를 받기 위해서 성전의 금화를 가져가면서 쌓여왔던 불만이 터졌다. 극렬 민족주의적 유대인들이 주도해서 무력으로 로마제국에 저항하며 전쟁이 일어났다.


한 때 로마군을 무찌르고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마카비 전쟁의 재현을 보는 가 싶었다. 아무리 막강한 로마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잠시 유대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로마는 네로 황제의 죽음 후 정세불안 때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뿐이었다. 정세가 안정된 이후 본격적인 로마군의 공격으로 결국 예루살렘과 유대인 사회는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주후 70년의 전투 때 마침 유월절 순례객을 포함해서 100만 명이 예루살렘 성안에 있었는데, 넉 달간의 포위 공격으로 굶어 죽은 사람만 60만 명. 나머지는 모두 로마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되고, 최후 항전 마사다 요새도 함락되었다. 유대인은 완전히 뿌리 뽑혀 버렸다. 이후 디아스포라의 역사 (복음서를 읽을 때 이미 과거의 역사)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이유는 이런 엄청난 재앙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커다란 재앙의 날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의 고통을 위해서 운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다! 너희가 겪을 재앙이 훨씬 더 크다! 그것을 위해서 울어야 한다.


(3) 예수님은 이처럼 역동적인 시대에 활동하셨다. 무력으로 정치적 나라를 회복하려는 에너지가 꿈틀거리던 시기. 그럼에도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세우는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의 통치 방식은 권세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이다. 나는 죄 용서를 위해서 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런 딴 소리만 하셨다. 그래서 혹시나 하면서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며 떠나고 배신감을 느껴서 십자가형에 동조했다.


반면, 예수님을 따르던 크리스천들은 유대전쟁 때 유대인에 동조하지 않고 예수님 말씀대로 피신했다. 유대전쟁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게 아니라 민족주의적 광기였을 뿐이다.


3. 우리가 울어야 할 진짜 이유

(1) 죄송함과 감사의 눈물

(a) 죄 없는 예수님이 왜 그리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나? 우리의 죄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서다.

사 53: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b) 죄는 그런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간과한다. 실수, 잘못, 그럴 수도 있지, 몰랐다잖아,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않나?


어떤 잘못은 그 결과를 보고서야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게 된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인데, 상대방에게는 상처를 주고 인격살인이 되는 경우 

-가벼운 행동 하나인데, 그로 인해서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커다란 피해를 발생케 하는 경우

-자식은 자기의 행동 하나가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게 하는지 모른다. 울면서 난리치는 엄마를 보면서 자기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 하나님께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크고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모습, 예수님께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죄가 얼마나 큰 지 또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이신 분이 오셔서 그토록 고통(육체적, 정신적, 영적)을 당하면서 처절한 죽음을 죽어야만 대가가 지불된다.


(c) 그래서 울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해 드렸구나. 내가 그렇게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있었구나. 이것이 우리가 울어야 할 진짜 이유다. 죄송함의 눈물이다.

죄송함의 눈물은 동시에 감사의 눈물이 된다.

이런 죄를 용서해 주신 거구나. 죽음으로만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건데, 그런 죄를 용서해 주신 거구나. 이런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2) 안타까움의 눈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죄송함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들에 대해서 우리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푸른 나무인 예수님도 이런 재앙과 환란을 당하는데, 하물며 마른 나무는 얼마나 큰 재앙을 당하겠는가! 40년 후 유대전쟁으로 인해서 민족이 완전히 망하게 되는 재앙! 수십만 명이 굶어죽고, 창에 찔려죽고, 불에 타서 죽고.... 성전은 무너지고 완전히 파괴되는 재앙...


이것이 그저 과거의 역사로 끝나는가? 예루살렘 파괴는 약과다. 역사의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재앙은 더 크고 무서운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재앙에 대해서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등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종말 때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말씀의 삶 강의 동영상)

사 2:19 그 때에 사람들이, 땅을 뒤흔들며 일어나시는 주님의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여, 바위 동굴과 땅굴로 들어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아무런 소망이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Abandon hope all ye who enter here.

(단데의 신곡[神曲], 지옥문 위의 글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은 지옥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


우리가 울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이런 끔찍한 재앙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울면서 기도해야 할 대상은 누군가? 

울면서 제발 이런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예수님을 믿게 하도록 치러야 할 희생은 무엇인가?


결론

울어야 할 진짜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

죄송함과 감사의 울음을 울자.

안타까움의 울음을 울자. 그리고 기도하며 희생하자.


2023/4/2 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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