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로 가는 길

마 18:21-22, 35

2013년부터 파쇄식을 하였다. 올해가 9번 째 회개와 용서를 위한 파쇄식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소위 송구영신인데, 옛 것을 잘 떠나보내자는 취지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로 잘 떠나보내자.

마음의 상처/분노/원한/복수심을 용서로 잘 떠나보내자. 

그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2022년 새해를 맞이하자.

오늘 용지를 나누어 드리는데, 개인적으로 기도/묵상하면서 진지하게 임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이다.

1. 여러 가지 선택지

한 해를 살았다는 말은 한 해 동안 많은 상처를 주고 또 받았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죄악으로 깨어진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피해를 당하면 상실(생명, 재산, 명예, 자존감, 행복, 평안 등)을 경험한다.

상실/상처를 당했을 때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부인(그냥 잊어버리자), 쓴 뿌리(어찌 할 도리가 없으니까 꾹 누르고 있자), 원한/복수(삶의 강력한 원동력, 그러나 파괴적인 힘).

‘원한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적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넬슨 만델라)

복수에 성공했다 해도 남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용서를 하라고 하신다. 그게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참 평안과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조건 없이’ 용서해 주심으로써 먼저 본을 보여 주시고, 우리도 용서의 길을 걸어감을 통해서 참 평안과 자유함을 얻으라고 하신다.

2. 용서에 관한 질문

(1) 상실/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게 되고 그러면 저절로 용서하는 것이다. 

아니다. 용서는 저절로 되지 않는다. 반드시 용서하기로 선택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용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월이 약이다? 그 약은 진통제일 뿐이지 치료제(원인제거)는 아니다. 나중에 다른 상처와 결합해서 더 크고 더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어떤 복잡한 마음상태라면 혹시 전에 용서하지 않고 그냥 덮어둔 일 때문인가?

(2) 가해자가 사과/회개를 안 하는데 어떻게 용서하나? 사과/회개한 후에 생각해 보겠다.

(a) 사과/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심플하고 깨끗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걸 기다리다가는 평생 맘 고생하면서 살게 된다. 

(b)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가 나를 용서한다고 할 수도 있다. 

얼마나  억울한 용서인가! 그러나 ‘하나님 용서하기’와 비슷하다.

피해를 당했을 때, 가해자를 용서하고, 하나님을 용서하고(왜 놔 두셨나요?),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왜 바보같이...). 

그런데 하나님을 용서한다고 할 때, 그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심정? ‘웃기네~! 니가 나를 용서한다고?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이 있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계신다. 죄 없는 하나님을 ‘용서’해서라도 분노와 원한의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

자신의 평안과 자유함을 위해서, 상대방/가해자에 관계없이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한다. 

(3) 너무 쉽게 용서해 주면 나쁜 버릇을 못 고친다. 정의가 무너진다.

사회적/법적 책임은 사회기관에 맡긴다. 그러나 내가 나쁜 버릇을 고쳐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맡겨두어야 한다. (잘못을 방치한다? 제일 무서운 일이다!)

(4) 용서한다면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다. 

아니다. 용서는 위대한 능력이다. 오히려 용서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용서는 힘과 용기 없이는 되지 않는다. 용서는 약자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원한과 쓴 뿌리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5) 용서한다면 내가 당한 피해가 실제로는 별 것 아니라는 말이 되는 거 아닌가?

피해도 내가 당하고, 용서도 내가 해야 한다는 말인가? 억울하다! 불공평하다!

용서는 내게 일어난 일이 아무 일도 아닌데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잘못된 일이고, 죄악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간다. 잘못된 일, 죄악을 용서하는 것이다.

맞다. 용서가 공평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용서함으로써 혜택을 입는 사람은 용서를 행하는 당사자다. 그래서 용서는 매우 이기적인, ‘자기 유익’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용서는 불공평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방법이다.’ (루이스 스미즈)

(6) 용서하고 나면 다 잊어버려야 하나? 용서했는데도 아픔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은 것인가?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한다. 

기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기억을 일부러 없앨 수도 없다.

그러나 용서했다면 여전히 기억은 나지만, 나쁜 감정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한편, 용서는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용서는 일시적인 행위가 아니라, 과정이다. 용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7) 용서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똑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가해자가 진짜로 잘못을 인정하는지, 다시는 같은 짓을 할지 안 할지, 하나님은 아시기/아실 수 있기 때문에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는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용서하되 그 일은 잊지 않는 게 어쩌면 현명하다.

깨어진 신뢰가 회복이 될 때까지 조심하는 게 지혜롭다.

진주만 아리조나호 박물관: ‘Remember Pearl Harbor’ (현재 미일동맹)

(8) 용서하면 그 사람과 같이 잘 지내야(화해) 한다는 말인가?

용서와 화해는 다르다. 용서는 일방적이고, 화해는 쌍방적이다.

화해가 되려면, 서로가 잘못을 분명히 인정하고, 분명한 사과/회개가 있어야 하고, 피해자가 관계 회복을 허락해야만 한다. 그러나 용서했다고 화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용서하셨지만, 우리가 회개(용서구함)할 때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에게 용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지만, 화해는 선택적/가변적이다.

3. 용서로 가는 길

남의 일일 때는 다들 쉽게 이야기 한다. ‘믿는 사람이니까 용서하고 털어버리라. 예수님도 그러지 않으셨느냐. 마음에 품고 있어 봤자 당신만 손해다. 용서해 버려라...‘

그런 말을 들으면 섭섭하고 마음이 닫힌다. 공감해 주어야 한다.

말대로 쉽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서 우리는 용서로 가는 길의 3단계를 밟게 된다.

용서의 3단계

(1) 용서하기로 결정

부인과 쓴뿌리는 우리를 망친다. 원한과 복수심도 우리를 망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다.

또한 너무나도 싫고 힘들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니까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쉽게 되지는 않는다. 작은 상처는 비교적 쉽게 용서되지만, 큰 상처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용서해 보겠다’며 용서의 길에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게 용서한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라 과정을 걸어 나간다.

그래서 너무 서두르지도, 보채지도 말아야 한다. 

(2) 분노와 슬픔 

피해를 당하면 뭔가를 상실한다. 생명, 재산, 명예, 자존심, 행복, 평안 등을 빼앗긴다. 상실한다.

중요한 것을 상실하면 반드시 어떤 감정의 반응이 생기게 마련이다. 분노와 슬픔이다.

이런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 없이 용서를 하는 것은 억지가 되고 오히려 안 좋게 된다.

(a) 분노

피해를 당했는데 화가 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진짜로 큰 피해/상실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이거나, 심리상태가 크게 망가졌다는 말일 수도 있다.

표출해야 한다. 토해 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어느 정도, 누구에게 표출하느냐가 중요하다.

엡 4:26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그런 선이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화를 토해 내는데 악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화를 내고 풀렸는데, 들은 사람은 나보다 더 화가 나서, 문제를 키워나가는 경우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이다(기도!). 신앙적으로 성숙한 조언자(되도록 제3자)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b) 슬픔

분노는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가 어떻게 피해/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한다면,

슬픔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고, 무슨 피해/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가서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슬픔의 시간을 가지고, 눈물(치유력)을 흘리면서, 서서히 원한을 내려놓고 복수를 단념하게 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도 있음을 수긍하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

(c) 반드시 필요한 과정

이 과정 없이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금물이다. 용서는 자연스럽게 본인의 속도에 맞춰서 되어야 온전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나 문화의 이름으로 이 과정을 생략한 채 혹은 너무 빨리 용서를 강요/압박하는 것은 2차 피해가 된다.

소위 ‘믿음 좋은’ 사람은 이 과정 없이 너무 빨리 용서를 해 버림으로써, 진정한 치유가 아니라, 부인과 쓴뿌리가 생기고, 관계의 어려움을 갖게 될 수 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용서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할 필요가 있다.

이게 용서한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라 과정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너무 서두르지도, 보채지도 말아야 한다. 

(3) 용서를 결단

분노와 슬픔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거쳐야 하는 과정이지만, 너무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신뢰할 만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에게 ‘이제 때가 되었어. 너는 충분히 분노했고 슬퍼했어. 이젠 용서해야 해’라고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시점에 이르렀을 때,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벗어나 마침내 완전히 용서하는 결정을 실제로 내리게 된다.

파쇄식 때 (1) 용서해 보기로 결심하는 경우, (2) 용서의 과정을 걷는 경우, (3) 용서를 최종적으로 결단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다 좋다.

4. 용서는 무엇인가?

(1) 용서란 상처/피해를 준 사람에게 보복할 권리를 포기하고, 나쁜 마음/부정적인 마음을 바꾸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용서는 선택/과정/결단이다.

(2) 용서는 하나님의 손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용서라는 말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어원을 보면 ‘자비를 베푸는 것’, ‘던져버리는 것’이다.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상처를 안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용서라고 하는 것은 누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죄이지만, 그것을 던져 버려서 더 이상 나에게 상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용서의 어원이다. ‘던져버리는 것’

하나님의 손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복수할 당당한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다 맡겨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세요’ 하고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상처는 치유되기 시작하고, 기억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묶임에서 놓임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용서를 해 보자.

12/19/2021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