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6. 주님께서 원하시면
4:13-17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아가면서 동시에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신앙 없이 열심히만 살아가는 사람과는 어떻게 다를까?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는 구분하기 힘들다. 어디까지가 좋은 크리스천의 삶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인지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구분하기가 힘들다. 오늘은 그런 점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1. 문제점
13절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1) 이 사람들의 문제가 뭔가? 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업과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모든 것은 타이밍(오늘이나 내일)이다. 또 대상이 중요하다(어느 도시). 소비자의 니즈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꾸준함이 요구된다(일 년 동안). 이렇게 해서 사회생활과 공부에 성공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죄도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 우리도 다 이렇게 하면서 살아가지 않나? 언제 해야 하지? 어디에서 하지? 얼마동안 하지? 이런 관점에서 목표하는 학교, 다니고 싶은 직장, 올라가고 싶은 직급, 하고 싶은 커리어, 펼치고 싶은 사업을 위해서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공부, 직장생활, 사업 등 모든 사회 영역/경제 영역의 일은 이렇게 해야 마땅하다.
(2) 그런데 왜 야고보는 이들을 책망하나?
이들이 무슨 나쁜 이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탈세를 한 것도 아니고,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기 친 것도 아닌데? 수업 땡땡이 친 것도 아니고, 시험 중에 컨닝을 한 것도 아닌데?
(a) 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니다.
보통 죄라고 하면 나쁜 짓,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일 등을 생각한다. 그리고선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그런 행동 차원만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와 삶의 태도이다. 오늘 본문은 그런 점을 잘 알려준다.
17절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생명의 삶>에서는 성경해석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 문맥에 따라서 해석하는 과정을 공부했지만, 여기서는 결론만 말하고 넘어가겠다.
선이란 인생은 나한테 달려 있는 게 아니다, 장래는 내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인생을 조금만 살아봐도 다 안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나? 자식 키워보면 더 안다. 가장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녀 키우는 것이라고 다들 말한다.
이것의 반대는 곧 인생은 너 하기에 달려 있다. 내 장래는 내 손에 달렸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그게 죄라는 말이다. (그래서 잘 되면 교만, 안 되면 시험)
왜 이게 죄인가? 책임감 있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하나님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죄이다.
(b) 죄는 마치 능력있고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부모를 업신여기는 사람과 같다.
다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은혜, 안전하게 지켜 준 사회 안전망의 고마움 등은 모른 채 다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남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해도, 정말로 ‘못쓸 인간’이다. 그걸 죄인이라고 한다.
죄는 관계적 개념이고 하나님과의 단절이 곧 죄의 본질이다.
사 53: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3) 이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았고, 나쁜 짓도 안 했지만, 또 가끔은 선행도 했겠지만, 가장 중요하게 하나님께 주권을 드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죄가 된다.
이 말씀을 부정적인 책망조에서 긍정적인 모델 제시로 바꿔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2. 하나님의 주권
주권(sovereignty)은 통치권, 최종 결정권을 말한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을 (1) 죄의 구원자 (2)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다.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내 삶의 주권을 예수님께 드린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다.
야고보는 하나님께 주권을 드린 사람의 모습은 어떠한 가를 설명한다.
(1) 하나님께 주권을 드린 사람은 독특한 말버릇이 있다.
습관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면’ 혹은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면’이라고 한다. (‘If it is the Lord's will’ ‘God willing’)
15절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야고보 뿐 아니라 바울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에베소에 들린 바울은 좀 더 오래 머물러 달라고 청하는 에베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행 18:21).
이런 말버릇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여서 책망을 받게 된다.
(2) 말로만이 아니라 크게 두 가지 면에서 하나님께 주권을 드려야 한다.
15절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a) 우리가 살 것이고(살기도 하고 죽기도 할 것이고) (b)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무슨 일을 할 지, 그 일의 결과가 어떻지...).
(a) 생명에 관한 주권(생명/수명/건강/죽음)
우리의 생명/수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 말은 건강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수명은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인 말도 아니다. 인생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생명/수명/건강 더 나가서 죽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권을 갖고 계시다는 말이다.
14절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불과한데,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면서 인생을 계획하고 또 삶을 영위해 나간다. 내일이 항상 보장되는 것처럼, 백 세 시대라니까 자동적으로 백 세까지 사는 것처럼 살아간다.
작년에 전도서 설교하면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메멘토 모리.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 살아라.
이것만 생각하면 염세적이 된다. 그래서 또 하나와 균형을 맞추자고 했다.
카르페 디엠. 오늘 하루를 붙잡아라. 충실히 살면서, 오늘 하루를 즐기고 감사하라.
최고의 카르페 디엠은 지금, 여기서 나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오늘 내게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하라는 부담감 혹은 하지 말라는 불편함)에 순종해서 따르는 것이다.
(b) 활동과 성취에 관한 주권
뭔가 하고 싶은 의욕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운동, 음악, 미술, 디자인(인테리어, 건축, 시각, 의류 등), 사업, 시설관리, 각종 커리어, 집안 살림(?). 그것을 위해서 참아가면서(보상유예, 만족지연능력)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또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둘 수도 있고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게 인생이다.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께 주권을 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다 이뤄주셔야 하는 분이 아니다. 크신 사랑과 지혜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이루게 도와주신다. 우리의 모든 활동과 성취 면에서 하나님께 주권을 드려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공부, 회사, 가정을 때려치우고 교회일만 하라는 것으로 오해한다.
헌신의 영역은? 가정, 일터, 교회이다. 그 모든 영역에서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일이다. 하찮아 보이는 일조차 하나님의 일이다.
모든 곳에서 모든 일을 하면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따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내가 설정한 목표, 내가 원하는 계획, 내가 기대하는 성공의 기준을 따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알려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삶이다.
3. 점검 기준
이렇게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자신을 어떻게 체크할 수 있나? 무엇이 기준인가?
계획 단계에서, 수행 과정에서, 결과를 대할 때
(1) 계획 단계의 자세
경건한 말버릇?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 보편적 질문: 이런 일을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이런 일 자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허락하실까?
- 개별적 질문: 이런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것인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에게 바라시고 허락하시는 일인가?
계획 단계에서부터 계속해서 이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뭐가 유망한지? 뭐가 돈 많이 버는 일인지? 뭐가 폼 나는 일인지? 이런 게 아니라...
(2) 과정 중의 반응
잘 안 될까 봐 염려가 되나? 염려가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단, 그 염려가 나를 더 준비하게 하고 더 열심히 대비하게 하는 정도인가 아닌가이다. 염려가 되지만 쉽게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느냐?
아니면 염려가 지나쳐서 노이로제, 불안초조, 맥박증가, 신경성 장 트러블, 피부 트러블, 수면장애가 오나?
(3) 결과에 대한 반응
- 성공했을 때? 자랑과 과시가 아니라 감사로 반응하는가? 자랑이나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감사가 인사치례가 아니라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반응인가이다.
- 실패했을 때? 당연히 괴롭다. 그래서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운다. (이 단계 건너뛰면 발전이 없다) 그러나 심한 자책과 과도한 원망 대신에, 뭔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받아들이나?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면’이라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시작할 때도, 과정 중에도, 결과 앞에서도 그 고백이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이 고백이야말로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이다.
결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1)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 지, 얼마나 건강하게 살아갈 지, 또 어떻게 죽을 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달려 있다고 인정하자.
물론 건강을 위해서 건강한 식습관을 가져야 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신체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나의 수명을 정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자!
(2) 주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의 뜻이면...
공부, 직장, 사업, 취미활동 등을 열심히 해 나가자. 하지만 명심하자.
시작 단계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좋아하실지? 나에게 허락하시는지?
과정 중에 지나친 염려에 빠지지 말자.
결과를 잘 받아들이자. 성공할 때 감사, 실패할 때 수용(받아들임)과 발전의 계기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5/25/2025 주일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