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홀로 되신 아버님 댁에서 잠을 자면서 돌봐 드리기 시작한 지 5개월이 되어갑니다. 단지 잠만 자는 게 아니라 건강 살피기, 필요물품 챙기기, 음식 관리, 요양보호사와의 소통 등 일체를 맡아서 하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귀한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힘든 일도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아버님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것을  잘 들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노인에게 이렇게 지난 일을 반복해서 말하는 게 필요할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크리스천 심리학자 한성열 교수의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아 형성의 시기인 청소년기에는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으로 던지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갑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평가/점검하는 중년기에는 ‘내가 잘 살아 왔나?’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거나 수정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더 이상 개선의 가능성이 없어진 노년기는 이 땅의 삶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노년기는 달리 말하면, 자신의 지나온 삶과 화해하는 시기입니다. 돌이켜 보면 안타까움과 회환이 많은데, 그런 부정적 감정 응어리인 한을 잘 풀면서, 다음 생을 준비하고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 말입니다. 이 과제를 잘 하신 분은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하시고, 잘 안 되신 분은 ‘내가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부정적 감정의 응어리인 한을 어떻게 풉니까? 지난 날의 이야기를 말로 하면서 풀어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노인이 새로운 일이 없어서 옛날 이야기를 반복하는 면도 있겠지만, 자꾸 반복 하면서 마음 속의 감정 응어리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한 번 말로 다 풀리지 않기에 반복하고 또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생을 준비하는, 너무나도 필요하고 중요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하시는 제 아버님과는 경우가 좀 다르긴 하지만, 자꾸 옛날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것을 지겨워 할 게 아니라 잘 들어드림으로써, 인생의 마지막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잘 도와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