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상반기는 코로나로 많은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과 목장과 가정이 저를 어렵게 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온라인 수업이 지겨워진 1학년 학생들이 오프라인 수업을 요청했습니다. 다수의 학생들이 집단 감염되었고, 학과는 폐쇄 되었습니다. 목장 휴장은 영적 생활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격주로 목원들과 나누는 교제와 쉐어링과 공동-기도가 없어지니 일상이 맥을 못 추었습니다. 특히, 목장 성경선생으로 목사님 주일 말씀을 요약하며 주중에 은혜를 많이 받았었는데, 이제 이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몸은 편했으나, 영적 탄력성이 떨어졌습니다. 가정적으로는 10년간 살아온 판교 주택이 매도되어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야 했고, 경아 집사는 뇌에 흰 반점이 발견되었고, 단우는 검정고시를 치뤘습니다. 평소보다 어려운 일들이 많은 2021년 상반기였습니다. 그래서 봄 학기 구약 성경 통독은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창세기 통독은 작년 목사님 주일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이야기와 이삭의 우물 파는 이야기에 몰입했었습니다. 금번에는 막벨라 굴 부분이 많이 다가왔습니다. 2017년 아버님 소천과 2020년 장인어른 소천이 가족의 죽음과 가족 장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했습니다. 산 자를 위한 양택이 아닌, 죽은 자를 위한 음택을 고르고 매입하는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동을 장시간 묵상해 보았습니다. 시세에 비해 많이 비쌌던 그 땅을 아브라함은 왜 깎아달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고, 매도자가 부당하게 요구하는 그 값을 왜 온전히 다 지불했는지, 더 나아가 왜 다른 땅이 아니라, 꼭 그 땅이어야만 했었는지를 두고 오래 묵상했습니다. 막벨라 굴 스토리를 읽으며 우리 가족이 매수해야 하는 막벨라 굴은 얼마이고 또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현재 경아 집사는 두통으로 시작하게 된 MRI 뇌검사를 통해 추적관찰 중에 있습니다. 의사들의 협진 결과, 추이를 더 지켜보자는 소견으로 6개월 텀으로 지켜보는 중입니다. 작년 2차 검사 때는 뇌의 흰 반점부위가 큰 변화 없이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올 초 3차 MRI 검사결과에서는 그 흰 반점 부위가 넓어 졌다고 했습니다. 3차 검사 후에는 매주 다른 과 의사 선생님을 뵈러 세브란스 병원을 내 집처럼 왕래했습니다. 의사는 조직 검사를 해야 더 확실한 병명을 알 수 있는데 흰 반점의 위치가 좌 뇌와 우 뇌 사이 깊숙한 곳이라 조직 검사 자체가 대형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위치가 이마에서 천공을 해서 들어가야 최단거리라 하는데 여자들은 그리 할 수 없으니 머리를 깎고 skull을 절개해서 뚜껑을 열어야 하는 대 수술이니 굳이 수술을 해야만 한다면, 그것은 단순 조직검사가 아닌 흰 부위를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을 때 수술하는 것이 낫겠다고 의사선생님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번 8월에 4차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거쳐가고 있어서 그랬는지, 저는 사사기 통독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사사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악해지는 모습이 위로가 못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룻기와 욥기는 읽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절망 중에도 소망이 있다는 룻기 이야기와 고통 중에도 소생의 결말이 있다는 욥기 스토리는 값졌습니다. 특히, 룻기는 페이지 수가 적어서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나오미를 생각하는 룻의 마음과 룻의 마음을 생각하는 보아스의 마음이 잔잔하지만 반복적으로 울렸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들의 이야기가 꽃 피운 사실이 놀라왔습니다. 

단우 검정고시 날은 4월 토요일이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단우는 전날 밤을 꼴딱 샜습니다. 시험일은 단우가 자퇴를 하겠다고 우리 부부에게 선언한 지 8개월이 된 시점이었습니다. 사실 자퇴 후, 단우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공부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자기주도형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군거질꺼리도 끊고 모범적인 음식을 섭취했습니다. 매일 운동도 철저히 했습니다. 따라서 검정고시는 단우에게 대학입시 전 작은 결실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단우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단우가 시험을 보고 있는 동안 저는 망포고 운동장을 오가며 대자보를 보았습니다. 수험생의 수를 세어 보고 그들이 배정 받은 반을 꼼꼼히 여러 차례 읽었습니다. 

중졸 검정고시가 과목 수가 적은 탓에 고졸 검정고시보다 먼저 끝났습니다. 저는 쏟아져 나오는 수험생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많아 보였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짬을 내어 공부를 한 탓인지 얼굴은 철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일련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오셨고, 그 다음에는 휠체어를 타신 지체 장애자 분들이 나오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육을 향한 모든 세대 사람들의 갈망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단우가 또래와 함께 있지 않고, 왜 이곳에서 국가고시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과 단우는 유사계층도 아니고, 더욱이 나이도 한참 어려 보이는 점이 저를 착잡하게 했습니다. 한번 생각이 안 좋은 쪽으로 흐르자, 더 안 좋은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입학사정관을 여러 차례 학교에서 해 본 적이 있어서, 대학에서 검정고시 출신을 어떤 기준으로 대하고 어떤 차별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머리 속은 아직 단우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 상황들로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단우가 시험을 끝내고 나오자, 저는 방긋 웃으며 단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단우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빠는 널 믿어, 너는 잘할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단우가 자퇴를 한 이후에 저는 부모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를 두고 많이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변하게 해보려고 애쓰지만, 많이 들어본 말씀처럼, 결국 그 과정 속에서 부모가 변하고 철이 듭니다. 이번 통독에서 ‘아브라함과 이삭’, 혹은 ‘한나와 사무엘’보다 다윗과 압살롬의 스토리가 참 아프게 읽혔습니다. 다윗은 왜 압살롬의 누이를 범한 왕자를 그 자리에서 벌하지 않았을까? 또 왜 다윗은 먼 곳에 숨어 있다가 돌아 온 압살롬을 돌아온 탕자의 스토리처럼 바로 그 자리에서 안아주며 용서해주지 못했을까? 그러고는 압살롬이 전쟁에서 죽자, 다락방에 올라가서 목 놓아 울었을까?   

금번 구약 통독에는 승리의 스토리가 유달리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통 속에서 비극적 결말을 맺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2021년 봄학기 구약 통독1을 통해서 저는 기쁨의 스토리보다는 슬픔의 스토리에서 더 큰 은혜를 받았고, 또 승리의 스토리보다는 실패의 스토리에서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침체기, 또 가족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이를 부추긴 듯싶습니다. 2021년 가을 학기에도 경아 집사의 두통 문제와 단우의 입시 문제는 걷히지 않을 문제들입니다. 다음 학기에는 어떠한 말씀들이 기다리고 있고, 또 어떤 기분으로 이 소감문을 읽게 될 지 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