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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고린도후서 강해: 8. 너울을 벗어버리자

본문말씀 : 고후 3:7-18
설교자 : 박덕주 목사
날 짜 : 2022.08.07
  • 관리자
  • 22.08.07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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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TGqMTVKO_E 


고린도후서 강해 8

너울을 벗어버리자

고후 3:7-18(13-18)


1. 본문 해설

(1)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 다비드(피렌체), 피에타(바티칸), 모세(로마)

2미터 넘는 모세상의 이마에 뿔이 두 개! 왜 모세 이마에 뿔이? 오해가 빚어낸 작품이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황금송아지 사건 이후 두 번째로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을 받아왔다.

그 때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났다.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얼굴에 빛난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빛’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하면서 비슷한 글자와 혼동해서 ‘뿔’이라고 오역했다.

그래서 모세의 이마에 뿔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얼굴에 난 빛/광채를 무서워했다.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모세 얼굴의 빛이 두려웠다.

그래서 모세는 그들을 위해서 자기 얼굴을 너울/수건/veil으로 가렸다고 한다.

마치 결혼식 신부의 베일? 혹은 더 두꺼운 천?

모세는 회막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너울을 벗고, 회막 밖으로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할 때는 너울로 얼굴/빛을 가렸다.


(3) 모세가 너울로 얼굴을 가린 이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a)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하나님의 영광 상징)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광채를 가려주기 위함 (b) 얼굴의 광채로 인해서 자기를 우상화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c) 그 광채가 계속 되는 게 아니라 점차 사라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릴까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4) 바울은 이런 구약시대의 일을 인용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추천장을 요구하는 고린도교인들은 ‘모세의 너울’을 쓴 자들이라 비판하고 있다.

‘모세의 너울’에는 좋은 목적도 있지만, 바울은 안 좋은 목적을 염두에 두면서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영광/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거부하고 너울로 차단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바로 옛 언약/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고, 이것이 바로 자신을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고린도교인의 마음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5) 그 대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16절) 

마치 모세가 하나님을 뵈러 회막에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듯이, 우리 마음을 덮은 모든 너울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참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17절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오해 금물: 주의 영(성령)에 사로잡히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자유다!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너울/뭔가에 가려져 있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자유, 하나님의 의도대로 변화/성장하게 되는 자유를 말한다.


(6) 우리 크리스천 모두는 (이미) 너울을 벗어버린 사람이라고 한다.

18절a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뿐 아니라, ‘점점 더 큰 영광’ 즉 변화/성화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18절b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너울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점점 변화/성화해 나간다는 말이다.


(7)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본다, 또 계속해서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참 송구스럽기만 하다. 

우리가 과연 그런 변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런 경지에 이르고 있는지? 

이 말씀이 내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혹시 너울을 한 번 벗고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다른 너울들을 몇 겹으로 덮고 있어서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믿기는 믿지만 변화와 성장이 없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2. 너울을 벗어버리자

(1) 너울을 벗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덮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가로 막는 너울,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을 가로 막는 너울,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가로 막는 모든 너울을 벗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성령님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주실 수 있다.


(2) 그들의 너울

(a) 유대인: 모세의 율법

15절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이라는 너울이 마음에 덮여 있어서, 율법이라는 손가락만 쳐다보느라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참 구세주이자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님을 올바로 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b) 고린도교인: 세상적 판단기준

'사도라면 적어도...' 그런 기준에 의하면 바울 당신은 사도가 아닌 것 같다. 언변도 시원치 않고, 고생도 많이 하고, 고질병도 있고.... 영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확실하다는 추천장을 제출해 보시오!

크고 높은 것이 성공이고, 하나님은 늘 좋은 일만 주신다는 세상적 기준


(3) 우리의 너울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믿는다고 해도 변화와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너울은 무엇인가? (본문을 기준으로) (모든 종류의 너울은 죄!!)


(a) 적당한 선에서 안주 Settle for less

더 잘 할 수 있는데, 더 나갈 수 있는데, 더 나아가야 하는데 적당한 거리에서 머물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두려웠다. 그렇다면 죄를 회개하면 되는데, 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다지 사모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모세를 통해서 들으면 됐다. 더 이상은 원치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려는 너울이 우리의 성장과 변화를 방해한다.


- 사랑: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배우자와 자녀) 그런데 얼마큼 사랑을 베푸나? 아니면 적당히 사랑하나? 적당히 살아가나?


사랑은 주는 것,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것, 사랑은 희생하는 것

예) 탑건 매버릭: 자기를 오해하는 친구의 아들 루스터(콜 사인)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탐 크루즈(매버릭). 또한 그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려는 루스터

자기는 그대로 있고 상대방이 자기를 메꿔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자신(생명, 기대, 사고방식)을 버리는 것이 사랑 아닌가!


-신앙: 하나님이 가장 귀한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이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신앙생활을 적당한 선에서 하고 만다면? 그저 적당한 선에서 안주한다면?

성경을 대하는 자세, 찬양과 기도를 하는 자세 더 나가서 교회와 교인들을 대하는 자세...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려는 너울이 있는 한, 18절은 공허한 말씀이 될 뿐이다.

우리는 더 나가야 한다. 더 사랑해야 한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한다.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갈 때까지, 예수님처럼 순종과 섬김의 사람이 되어갈 때까지... 그런 너울을 벗어버려야 한다.


(b) 고집 Stubbornness

14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를 고집/완고함이라고 지적한다.


자기 생각과 방식을 바꾸지 않는 고집

그저 고집불통일 수도 있지만, 고집은 일종의 자기보호라고 한다. 두려움, 고통, 취약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작동된다. 그래서 합리적인 말에 귀 기울이거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마음에 성벽을 쌓아버린다. 그리고 마음이 돌처럼 굳어져 버린다. 완고! 


그렇게 본다면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는 그게 익숙한 방식이기에, 자존심 상하기에, 이후 잘 할 자신이 없기에(두려움)...


상대방에게 고집스럽다고 하지만 어쩌면 상대방을 대하는 내가 더 고집스러운 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시대가 변했다고 한다. 옛 언약에서 새 언약의 시대로, 돌판에 문자를 새기는 시대에서 가슴판에 영으로 쓰시는 시대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시대로. 이렇게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전히 옛 시대의 것/과거를 붙들고 고집이라는 너울을 벗지 않는다면 안 된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뀐다.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뀐다.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바꾸지 않기로 고집한다면 하나님도 도와주실 수 없다.

기존방식을 내려놓고, 두려움을 내려놓고, 아픈 상처를 내려놓고 고집이라는 너울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성령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주시고 새로운 능력을 주신다. 지금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길이 열리고, 문제가 풀린다.

그러지 않으면 평생 자신의 고집 안에 사로잡혀서 성장/변화는커녕 불행/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그밖에도 어떤 너울이 나의 변화와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지 각자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결론

16절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너울을 벗겨주십니다.


18절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약속하시는데, 우리를 주님의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너울을 벗어버립시다. 

그럴 때 점점 더 큰 영광에, 점점 변화/성장/성숙한 삶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같이 기도 후 헌신찬송

결단/헌신하실 분 앞으로 나오시길


8/7/2022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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